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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테러, 억눌린 자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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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테러, 억눌린 자의 저항

입력
200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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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인질 사태 와중에 인질 가족들이 체첸 독립과 전쟁 종식 등 체첸 반군 인질범들의 요구에 동조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일부에서는 이를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규정했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은행 인질 강도 사건 때, 인질들이 범인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한 것과 같은 이상(異常) 현상이란 풀이였다.인질이 흔히 인질범에 영합하는 것은 자기보호 심리에서 비롯된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인질들은 잠재의식에서 자신을 인질범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안도하는 경향마저 있다고 한다. 이런 심리적 연대감은 극단적으로는 자신들을 구하려는 경찰을 위협으로 여기고, 적대 행위에 가담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 인질 가족들의 시위를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간단히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질 사태를 본질은 외면한 채 테러 범죄 차원에서만 보도록 그릇 유도한 측면이 있다. 인질들의 절박한 처지를 고려하더라도, 체첸 전쟁 종식과 독립 허용을 외친 것을 인질범에게 아부하려는 거짓 동조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태가 끝난 뒤 러시아의 독립적 언론이 테러의 충격과 참상에 가려진 사태의 본질, 체첸 문제의 근본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관변 언론이 전하는 러시아 여론은 강경 진압을 불가피한 조치로 지지한다. 인질 120명을 숨지게 한 치명적 마취가스 사용도 용인하는 분위기다. 희생자 유족과 외부 언론이 인명 경시를 탓하지만, 미국 등 서구까지 테러 척결을 강조하며 푸틴 대통령의 강경책을 옹호하는 상황에서 힘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보수 언론은 치안 불안을 부각시켜 강경책을 부추기고, 푸틴은 기다렸다는 듯이 체첸 반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권위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비극적 사태의 교훈을 올바로 인식할 것을 촉구했다. 테러 대응을 둘러 싼 논란은 곁가지일 뿐, 체첸의 절망적 상황이 테러의 주된 동인(動因)임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테러는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이라는 파격적 규정을 내놓으면서, 테러의 선악을 판정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적은 체첸 문제의 핵심에 다가간 것이다. 1996년 러시아군의 철수로 체첸의 제한적 독립을 사실상 인정한 러시아는 99년 푸틴 당시 총리의 주도로 다시 체첸 전쟁을 시작했다. 명분은 체첸 정부가 반군 세력을 통제하지 못해 러시아 변방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카스피해-흑해 연결 송유관이 지나는 이 지역의 석유자원을 장악하고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의 독립 시도를 견제하려는 이해가 깔려 있다.

이런 시각에서는 서방도 체첸 문제에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서방은 당초 러시아의 대 체첸 전쟁, 특히 민간인 학살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서방도 러시아 변방 교란과 석유자원 장악 등을 노리고 이 지역 분쟁에 적극 개입했다. 이것은 다시 러시아가 체첸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동기와 명분을 함께 제공했고, 10년간 전쟁으로 120만 체첸인 가운데 10만 명이 희생됐다.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러시아의 지속적인 경제 봉쇄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서방세계는 절망한 체첸인들의 몸부림을 외면한 채 러시아를 편들었다. 석유자원 장악 등 전략적 패권이 진정한 목적인 '테러와의 전쟁' 명분과 러시아와의 타협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이해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체첸 반군은 결국 테러리즘의 효용을 극적으로 세상에 알리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이 시대는 억압하는 강자와 억눌린 약자가 극한적으로 부딪치는 '테러의 수렁'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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