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기 못 보던 종인데, 또 새로운 새가 날아온 모양인데요."4일 서울 마포구 난지도 월드컵 공원 내 노을공원. 공원관리사무소에서 생태계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손병도(孫炳度)씨는 입이 활짝 열렸다. 나무들이 우거진 비탈길에서 10여㎝ 남짓한 작은 텃새인 흰머리오목눈이 수십마리를 발견한 것.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던 그는 "하루가 다르게 새들이 모여 드는 것 같다. 쓰레기 더미가 이렇게 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쓰레기산 난지도가 동식물의 보금자리로 거듭나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화사한 공원으로 단장한지 6개월여. 주말에 만여명의 인파가 몰리는 이곳은 비단 시민들만의 공원은 아니다. 새들과 함께 각종 나무와 식물들이 어우러진 도심 생태 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십여종 새들의 낙원
"저기 하늘을 한번 봐요." 손씨는 또 연신 창공을 향해 손짓했다. 꽤 먼 하늘 위로 한 마리 새가 잔잔한 리듬을 타듯 비행하고 있었다. 최근 이곳을 찾아온 수리과에 속하는 말똥가리였다. 유유히 날며 멋을 부리던 말똥가리는 한순간 먹이를 발견하자 쏜살처럼 하강해 새 한마리를 낚아챘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맹금류의 새사냥 풍경이 목격된 것. 산책 나왔던 한 시민은 "와우!" 감탄을 터뜨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인 맹금류의 서식은 난지도가 서서히 생태계의 질서를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월드컵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공원에서 발견된 새 종류만 28과 58종. 아까시 나무와 버드나무가 우거진 수풀과 공원을 감싸고 흐르는 난지천 주변에 각종 텃새와 철새들이 몰려들면서 31종이 발견됐던 2000년에 비해 배 가까이 늘어났다. 오색딱따구리, 물총새, 박새, 제비, 꾀꼬리, 흰눈썹황금새 등 서울시가 지정한 관리야생조류 6종이 모두 발견됐고, 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황조롱이와 솔부엉이 등의 맹금류도 둥지를 틀고 있다.
■난지천은 새들의 휴식터로
쓰레기 침출수가 흐르던 난지천은 하루 5,000톤씩 공급되는 한강물이 흐르면서 철새들의 휴식터로 탈바꿈했다. 여름철에 해오라기, 물총새, 노랑할미새 등이 노닐던 물가엔 지난달 들어서는 청둥오리, 쇠오리 등 겨울 철새 수십 마리의 쉼터가 됐다. 월드컵 공원을 찾은 최윤수(崔潤秀·38)씨는 "이런 자연 앞에서 난지도가 쓰레기집합소였다는 사실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대부분 귀화식물들. 돼지풀, 개망초, 독말풀, 겹달맞이꽃 등 귀화식물은 대부분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파괴된 땅에서 자라는 잡초들이다. 월드컵 공원에서 채집된 식물 220여종 중 80여종이 귀화식물이지만 전체 면적의 70% 정도를 덮고 있다. 그만큼 토양이 나빴다는 뜻이다.
서울시립대 이경재(李景宰·조경학과) 교수는 "외래종인 귀화식물에는 곤충들이 적응하기 힘들어 매우 제한적으로 서식한다"며 "새들이 곤충을 먹는 먹이사슬 체계가 형성돼야 하지만, 아직은 주로 귀화식물들의 열매를 먹는 불안정한 체계다"라고 말했다.
■귀화식물들 천이과정 밟아
귀화식물들이 때로 농작물의 생육을 방해하며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역으로 폐허의 땅에 자리를 잡아 토양을 기름지게 만드는 '프론티어'이기도 하다. 한두해살풀이 먼저 움튼 뒤 여러해살이풀이 들어오고, 이어 자생식물들이 자라면서 귀화식물이 도태되는 생태계 천이 과정을 밟는 것.
국립수목원의 귀화식물 전문가 박수현(朴壽現) 박사는 "90년대 초만해도 귀화식물이 난지도의 90%를 덮고 있었지만, 96년이후부터 억새, 쑥 등 자생식물이 자라기 시작해 지금은 70% 정도로 줄어든 상태"라며 "귀화식물이 생태계 천이과정의 개척자 역할을 하면서 난지도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난지도 제2매립지를 흙으로 덮어 만든 해발 95m 위의 하늘공원. 5만8,000여평의 평평한 초원엔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땅속 1m 밑은 바로 쓰레기 더미. 문명의 찌꺼기를 딛고 선 거대한 자연의 시험장인 셈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난지도 小史
난지(蘭芝)는 은은한 향기를 지닌 난초와 영지를 아우르는 말. 지극히 아름답다는 뜻이다.
이곳은 원래 동쪽으로 불광천과 홍제천, 북쪽으로 성산천, 샛강인 난지천으로 둘러싸인 82만여평의 섬. 섬 양쪽으로 갈대숲이 무성한데다 한강 하류의 풍부한 동식물로 겨울이면 고니떼 등 수만마리의 철새들이 몰려오는 자연의 보고였다.
난지도가 악명의 땅으로 변한 것은 1978년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팽창하는 서울의 쓰레기가 매립되기 시작해 93년까지 계속됐다. 15년동안 무려 920만톤의 쓰레기가 매립돼 높이 100m에 이르는 거대한 2개의 산이 만들어졌다. 쓰레기 침출수와 악취, 유해가스가 발생하면서 주변 한강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었다.
한동안 방치돼 있던 이곳은 96년부터 가스와 쓰레기 침출수를 처리하고 상부를 흙으로 덮는 등의 쓰레기 안정화 공사가 이뤄졌다. 98년 인근에 월드컵 주경기장이 건설되면서 이곳에도 공원화 작업이 전개됐고 올 5월 월드컵 공원으로 탄생하게 됐다.
/송용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