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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大 개막 제4세대 중국/(상)장쩌민 13년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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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大 개막 제4세대 중국/(상)장쩌민 13년의 공과

입력
200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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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이 8일부터 16차 전국대표대회(16大)를 개최한다. 5년 만에 또 21세기 들어 처음 열리는 이번 당대회는 3세대에서 4세대로의 지도부 대거 교체와 함께 24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성과를 점검하는 자리가 된다. 과거 14대, 15대에 비해 한 달 이상 늦게 열리는 16대는 공산당이 안고 있는 고민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장쩌민(江澤民)의 13년 집권을 마감하고 4세대 후진타오(胡錦濤)의 시대를 여는 16대에 대한 특집을 3차례 연재한다.

■체제안정·고도성장… "중국의 힘" 과시

1989년 6·4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16대를 통해 13년 간의 통치를 마감한다.

8일 16대 개막식에서 江 주석은 당총서기 신분으로서 지난 5년 간 공산당 활동에 대한 마지막 정치공작 보고를 한다. 江 주석의 정치공작 보고는 10년 전 14대와 5년 전 15대에 이어 세 번째다. 중국 역대 최고지도자 중 세 차례 연달아 정치공작 보고를 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3세대 지도부의 핵심인 江 주석의 13년 통치에 대한 공과를 살펴봄으로써 곧 전개될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 중심의 4세대 지도부의 과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江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와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 무력을 통괄하는 당중앙 군사위 주석으로서 당·정·군을 모두 장악한 태상황(太上皇)이다. 중국 건국 이래 당·정·군 최고위직을 모두 가졌던 인물은 그뿐이다.

그는 89년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재임 중 돌연 당총서기로 발탁돼 중앙 정치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비록 신4군(新四軍) 수뇌와 가까운 혁명열사 장상칭(江上淸·1939년 전사)의 양아들이긴 했지만 그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그가 당총서기로 발탁됐을 당시 중국은 천안문 사태가 초래한 혼란으로 인해 '붉은 깃발'이 앞으로 얼마나 휘날릴 수 있을지 염려할 만큼 대내외적으로 불안했다. 江 주석을 중심으로 한 3세대 지도부는 이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고 안정시킴으로써 13억 중국인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특히 대외적으로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2년 월드컵 본선 진출, 상하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중국인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서방 외세에 의한 침탈의 상흔인 홍콩이 97년 반환됐고, 99년에는 마카오까지 주권이 귀속돼 완전한 통일도 눈앞에 두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은 10여년간 8∼10%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유지함으로써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각종 관영 언론들은 江 주석 업적 선전에 여념이 없다. 주간 중난하이는 최근호에서 "江 주석은 걸출한 영수이자 지도자"라며 그가 국가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안정시켰다고 극찬했다. 이 잡지는 더 나아가 "江 주석은 중국 유일의 1개 중심"이라고 강조함으로써 4세대로의 세대교체 전망을 무색케 했다.

언론들은 또 江 주석이 중국의 기본제도와 헌정체제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대변화를 예측해 '3개 대표론'을 제시함으로써 치국의 신개념을 마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산당이 선진생산력, 선진문화, 가장 광대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3개 대표론은 전통적인 계급투쟁이론에서 크게 이탈한 성격을 갖는다. 언론들은 江 주석 시대는 위대한 시대로서 중국은 식량이 남아돌고, 세계의 공장화가 실현됐다며 그의 기치를 따르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방언론과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江 주석이 자신의 등장 계기가 된 천안문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천안문 사태 재해석은 물론 정치발전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江 주석 시대 13년은 중국의 인권과 종교, 특히 파룬궁(法輪功) 탄압 및 만연한 부패, 실업, 지역발전 불균형 등 그림자가 너무 짙다는 비판도 받는다.

江 주석은 또 16대를 불과 며칠 앞두고도 후계자 선정이 불투명한 상황을 비꼬는 "중국의 권력승계는 아직도 무덤에서 조종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헌법이나 규정 등 구체적인 원칙이 없는 상황에서 권력승계가 자의적으로 밀실에서 흥정된다는 혹평이다. 소수민족 문제와 민주화 문제 등도 앞으로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江 주석의 업적을 훼손할 수도 있다.

江 주석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공존하지만 그는 역사상 중국을 안정시키고 풍요한 시대를 연 최고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에 대해 "인기는 별로지만 공로는 인정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지난달 22∼27일 江 주석의 미국방문 및 멕시코 APEC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홍콩 언론들은 '졸업여행'이라고 묘사했다. 16대를 통해 권력에서 졸업하든 않든 江 주석의 장기집권은 또 다른 공과 논쟁을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장쩌민, 세갈래 막후 영향력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정치적 영향력은 16대에서 그의 전면 퇴진 여부와 관계없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은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4세대 지도부의 권력기반이 상대적 약체인 만큼 일정기간 江 주석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내 여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江 주석의 영향력 유지 수단에 대한 예측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16대에서 측근 세력의 대거 요직 기용, 국가안전회의(또는 국가고문회의) 설립, 당중앙 군사위 주석직 보유 등이다. 이중 측근 세력 강화는 이미 현실화했다. 명보 등 홍콩언론은 최근 16대를 앞두고 이뤄진 인사에서 江 주석 계열 인물 10여 명이 대거 중앙으로 진출해 당내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했다고 보도했다.

정치국 위원 황쥐(黃菊), 자칭린(賈慶林), 리창춘(李長春)과 후보위원 쩡칭훙(曾慶紅) 등은 권력핵심부인 정치국 7인 상무위원에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江 주석의 핵심 참모인 曾은 江 주석 계열 인물들의 당내 관리인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대만 중국시보는 曾을 胡 부주석(대외적인 핵심)과 비교해 '숨어있는 핵심'이라고 표현했다.

국가고문회의 설치 전망은 퇴진과 잔류로 이견을 빚는 현 3세대 지도부 내부의 이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에서 나온다. 江 주석이 보수파의 대표로서 퇴진을 거부하는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과 협력해 공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고문회의는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퇴진을 거부하는 원로세력을 진무하기 위해 설치했다가 92년 폐지된 적이 있다. 江 주석이 고문회의를 또다시 설치할 경우 당 내외의 반발이 예상된다.

명보는 5일 중국 소식통들을 인용, 江 주석의 당중앙 군사위 주석직 잔류를 주장하는 군부 여론이 높다고 보도했다. 다시 5년 간 군권을 장악함으로써 군 현대화와 대만통일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胡 부주석도 동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세대교체의 대세를 역행한다는 점에서 군사위 주석직 유지는 江 주석에게 큰 부담이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 장쩌민 연표

▲1926년 8월 17일: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시 출생

▲43년:공산당 지하 학생운동 시작

▲46년 4월:공산당 가입

▲47년:상하이(上海) 교통대 전기과 졸업

▲55∼56년:모스크바 스탈린 자동차공장 실습

▲62년:제1기계부 소속 상하이 전기과학연구소 부소장

▲80∼82년∼:국가수출입위·외자관리위 부주임

▲82∼85년:전자공업부 제1부부장, 부장

▲85∼87년:상하이 시장, 상하이 당부서기, 당서기

▲87년 11월∼:당중앙 정치국 위원

▲89년 6월∼:정치국 상무위원, 당 총서기

11월∼:당중앙 군사위 주석

▲90년 3월∼:국가 군사위 주석

▲93년 3월∼:국가주석

● "지는별"들 향후 행보는

중국의 원로 및 당·정·군 지도자들이 모여 중국의 권력구조 개편 가닥을 잡은 2002년 여름 보하이(渤海)만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 무거운 침묵과 탐색 속에 긴장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제일 먼저 일성을 낸 것은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치협상회의 주석 리루이환(李瑞環·68)이었다. "당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또 후세대에 무리 없이 우리가 권력을 이양하는 좋은 전통을 위해 모두 용퇴합시다."

주위에 있던 정치국 상무 위원들은 이제 결단의 순간이 왔다고 느꼈다. 제일 놀라고 긴장한 것은 장쩌민(江澤民)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그는 입장 표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즉시 총서기 용퇴 의사를 발표했다. 이에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李 정협주석,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웨이젠싱(尉健行)은 찬성을 표했다.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도 일관되게 용퇴의 뜻을 분명히 했다.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은 기권했고 리난칭(李嵐靑) 국무원 부총리만 반대를 했다. 결국 다수결에 의해 江 주석이 용퇴의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이상은 중국과 홍콩 언론들이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엮은 것이다.

8일부터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기술관료 출신 제3세대 영도그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胡 부주석 중심의 제4세대 그룹이 부상한다.

江 주석이 완전 용퇴할지가 최고의 관심이지만, 李 전인대상무위원장은 자신의 보수 인맥과 원로들의 힘을 활용, 은퇴 후에도 권력의 끈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단호한 사람은 朱 총리다. 그는 누가 뭐라하든 스스로 수 차례 언급했고 결심한 대로 은퇴의 길을 가겠다는 태도이다. 68세인 李 정협주석은 아직 나이도 있어 차기 4세대 영도 그룹에 합류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으나 江 주석이 용퇴하는 한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는 江 주석의 3개 대표이론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유일한 지도자다. 홍콩 언론들은 江 주석이 그를 퇴진시키기 위한 쿠데타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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