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일 전 농업보조금 문제로 격렬한 설전과 외교마찰을 겪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이번에는 유럽 방위정책을 놓고 다시 충돌했다.블레어 총리는 4일 "유럽안보방위정책(ESDP)의 장래에 대해 프랑스와 분명한 이견이 있다"고 밝힌 뒤 "우리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각은 옳지 않으며 영국은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ESDP는 유럽연합(EU)이 독자적 군사행동을 할 수 있도록 내년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6만명 규모의 신속대응군. 두 정상 간 이견은 프랑스가 ESDP를 장기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별개의 조직으로 하자는 입장인 반면 영국은 NATO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ESDP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NATO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에 대한 두 정상 간 시각차가 자리잡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유럽통합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예상외로 밀착하는 데 대한 영국 정부의 불안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유럽안정성장협약'의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은 EU 내에서 양국 협력관계를 강화한다는 방침 하에 유럽통합의 조건과 절차 등에 대해 최근 일사분란한 공조를 보여왔다. 다른 유럽 소국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로 묶는다는 유럽통합의 전제조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 이라며 협약을 융통성있게 운영할 것을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또 인플레 실업 국가부채 및 연구개발·연금 등 다른 변수들도 고려해 회원국의 경제상황을 평가해야 한다고 언급해 과거 EU 정책결정과정을 주도했던 양국 지배체제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왔다.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브뤼셀의 EU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농민이 큰 혜택을 보고 있는 농업보조금 제도에 대해 블레어 총리가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자 감정적인 격론을 벌인 끝에 다음달 3일 프랑스 르 투케에서 열릴 예정이던 양국 정상회담까지 연기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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