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검장님 결정은 언제나 옳았지만 이번 결정만은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이명재(李明載)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5월 서울 고검장직을 사임할 때 후배 검사들이 그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검찰이 정치바람에 휩쓸려 온갖 풍상을 겪고 있을 때였다. 서울지검 특수부 젊은 검사들은 존경하는 선배의 퇴임을 막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편지 글을 통해 섭섭함을 이렇게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서민을 위해 백마 탄 기사가 되라"는 당부를 남기고 법복을 벗었다.■ 그의 퇴진을 법조계에서는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말했다. 사법시험 후배나 동기생이 상사가 되었을 때 자리를 물러나는 것은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이 고검장의 경우는 달랐다. 그 때 새로 검찰총장이 된 사람은 시험 선배였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직의 원로가 되면 적당한 때 물러나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도리라고 평소 생각해 왔으며, 이제 그 결심을 실행하는 것 뿐이라는 게 퇴임의 변이었다.
■ 그렇게 물러난 그는 8개월 만에 검찰총수가 되어 돌아온다. 재야에서 검찰총장을 발탁한 흔치 않은 사례였다. 그만큼 실추된 검찰의 명예회복이 급한 때였다. 그렇게 친정에 돌아온 그는 곧 '수도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기관리가 그만큼 엄격하다는 얘기였다. 우선 골프부터 그만두었고, 외부 인사 접촉을 피했다. 특히 퇴근 후 모임 참석을 끊었고,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식사 장소는 언제나 구내 식당이었다. 집무실에 불필요한 사물을 두지도 않았다.
■ 그러면서 원칙에 충실한 집무자세로 검찰의 신뢰 회복에 힘썼다. 대통령의 두 아들을 구속한 일, 전임 검찰총장과 현직 고검장을 기소한 일은 검찰이 달라진 모습의 한 단면이었다. 그런 그가 부하 한 사람의 과욕 때문에 사표를 썼다. 미적거리다 떠밀려 물러나지 않고, "마땅히 책임질 일"이라며 홀홀하게 물러갔다. 검찰이 고문 끝에 사람을 죽인 초유의 사태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근래 처음 보는 자진사퇴가 아쉬운 것은, 신망 있는 검사 한 사람을 잃은 허전함 때문이다. 그의 이번 결정도 승복하지 말아야 할까.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