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과 총장의 동반 사퇴…. 4일 초유의 치욕을 겪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는 온통 비통한 분위기 속에 말을 잊었다. 과거 수뇌부의 돌발적 사의 표명이 대부분 정치적 외풍에 의해 이뤄졌던 것과는 달리 '피의자 구타 사망'이라는 검찰 내부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당혹, 비탄, 망연자실 검찰
이명재(李明載) 총장의 사표 제출 사실이 알려진 오후 5시25분께 일선 검사들은 예상 밖의 기습적 용퇴에 당혹과 비탄을 금치 못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이럴 때일수록 총장이 자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 역시 "총장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 같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특히 이번 사태는 인권을 강조해 온 '국민의 정부'에서 검찰이 피의자 사망이라는 극단적 인권 침해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아픔이 더욱 사무치는 분위기였다.
김정길(金正吉) 장관의 동반 사의표명과 청와대의 사표수리 방침이 전해지면서 "결국 이렇게…"라는 장탄식이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결국 언론이 사퇴를 유도한 것 아니냐"며 퉁명스레 답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했다.
■종일 긴박, 결국 동반 사퇴
이 총장은 오후 4시30분께 과천 법무부 청사로 가 김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장관과 10여분간 회동한 이 총장은 바로 잠적했으며, 김 장관은 총장과 자신의 사의를 이재신(李載侁) 민정수석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간부들 역시 장관의 사표제출을 뉴스를 보고 알 정도로 김 장관은 거취에 대해 일체 사전 언질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수(鞠敏秀) 대검 공보관이 총장의 사표제출 사실을 발표한 후 대기상태에 있던 대검의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은 굳은 표정으로 이 총장을 만나러 떠났고 서울지검은 김진환(金振煥) 검사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에 앞서 이 총장은 오전 예정된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앞두고 9시께 굳은 표정으로 서초동 대검청사에 출근했다. 10시께 소집된 확대간부회의에서 간부들은 사과문 초안 중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문구의 수정을 건의했으나 총장은 "그대로 가자"고 말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간부들은 사과문 발표 직후, 총장실로 몰려가 '퇴진불가'를 진언했으나 이 총장은 "내가 모두 책임져야 조직이 산다"며 만류를 물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강훈기자 hoony@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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