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외곽 516도로 한복판. 11월의 강풍과 까마귀들의 울음 사이로 덮개 없는 랭글러를 몰고 한 남자가 나타난다. 검은 색 빌로드 상의, 흰 셔츠, 갈색 선글라스가 영락없는 한량이다. 이때 한 여인(베이비복스의 김이지)이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로 우연을 가장한 접촉사고를 낸다. 남자는 "죽으려고 환장했어?"라며 호기롭게 외쳐보지만 곧 이 여인의 손에 끌려 베이징 역에 내동댕이쳐질 운명이다. 바로 탤런트 고 수(24)."형한테 빈대 붙지 말고 이제 장가나 가." 아버지(김갑수)에게 스스럼없이 구는 다정다감한 청년의 이미지(SBS '순수의 시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 힘겨워 하는 눈망울 큰 청년 재수(SBS '피아노')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다면 바람둥이 이미지는 선뜻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고 수가 1일 제주에서 KBS 미니시리즈 '북경 내사랑'(극본 김균태, 연출 이교욱)의 첫 장면을 촬영했다. '북경 내사랑'은 한·중수교 10주년을 기념한 합작 드라마. 바람둥이 재벌 2세 주인공 나민국(고 수)이 아버지의 뜻으로 베이징에 가서 퓨전요리로 음식시장을 석권하고, 중국 아가씨 메이(랴오 샤우친)의 사랑도 얻는다. 20부작을 사전전작제로 만든 뒤, 2003년 7월에 방영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70% 이상을 촬영하고 중국 CCTV에서도 방영한다.
"점심도 못 먹고 내내 추위에 떨었어요." 선글라스를 벗자 충혈된 눈동자가 보인다. 고수는 "나민국이 이제껏 맡아왔던 캐릭터와 정반대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입을 뗐다. 한국에서는 방탕한 재벌 2세로, 중국에서는 라면가게 하나로 베이징을 제패하는 기업가로 변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보다 사랑에 치우치는 역할을 맡아왔는데, 일에 비중이 커지고 한 남자로서 욕망을 드러내는 역을 맡았다"는 말에 두려움 반 설렘 반이 배어있다. 일과 사랑, 어느 쪽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지금 한참 사랑할 나이에 일을 하고 있잖습니까"라는 현답으로 받는다.
'꽃미남' CF 모델로 주가를 올렸고 '피아노'(2001)의 재수로 연기파 배우로 변신을 알렸다. 그러나 98년 데뷔 당시엔 시트콤 '점프' '논스톱'으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가벼운 캐릭터도, 제가 하면 덜 가벼워질 것 같아 선택했나봐요. 제 이미지가 가라앉아 보이고,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고수는 이제까지의 이미지를 벗어나 전혀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그는 '북경 내사랑'의 현지 촬영을 준비중이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연기가 겨우 카메라 테스트 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배경이 낯선 중국이어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제주=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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