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토 면적은 960만㎢로 남북한의 44배, 인구는 12억 7,000만 명으로서 18배에 달한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는 잠재적 국력의 지표임과 동시에 국가 통치상의 부담이기도 하다. 중앙정부의 통제력 상실 가능성을 강조하는 '중국 분열론'과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우려하는'중국 위협론' 등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같은 이중성 때문이다. 중국 분열론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즉 중앙―지방 관계의 끈이 느슨해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중앙―지방의 응집력 약화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본격화했다. 이것은 시장경제에서 요구되는 국가의 역할과 그 구성 요소들 간의 권력 배분 양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위해 지방권력 강화
계획체제로부터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지방 분권화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지방 정치 엘리트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했다. 이러한 정치적 논리에 따라 그는 일정한 범위에서 권력의 지방이양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는 각 지방으로 하여금 자주권을 바탕으로 비교우위를 발휘하게 함으로써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했다.
중국식 개혁의 특징인 점진적인 개혁을 위해서도 지방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 생산성의 지역·부문 간 차별성을 특징으로 하는 다층적 경제구조에서 지방정부의 주도적 역할만이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고, 기업들 간의 적절한 경쟁을 위한 정치경제적 틀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속한 사유화와 이에 따른 체제불안을 방지하는 데도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방분권화는 지방주의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았으며, 그 심각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유기업의 자율성을 위해 중앙정부가 부분적으로 계획을 포기한 결과, 지방정부의 경제적 권력이 과도해지는 소위 제후경제(諸侯經濟)가 형성되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경제 보호를 명목으로 원자재를 독점하거나 시장봉쇄와 같은 보호주의적 조치들을 취하기도 한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에서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지방분권화가 초래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지역간 불균등 발전이다. 오늘날 동남 연해지역과 내륙지역의 1인당 소득격차는 3∼4배에 이른다. 지역간 소득격차는 경제적 입지조건이 유리한 연해지역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연해지역의 인구 편중을 심화할 뿐 아니라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내륙지역의 정치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적 이익보다 지방 이익을 우선
작년부터 대대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서부 대개발 전략은 지역적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 조달과 이를 위한 동부 지역의 지원 확보는 중앙 지도부의 정치력에 대한 중요한 실험이 되고 있다. 서부 대개발은 시장경제의 논리인 지역적 비교우위의 장점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공을 낙관할 수 만은 없다.
중앙정부의 재원확보와 지방간 조정의 문제는 특히 재정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개혁·개방 초기 중앙정부는 지방분권화의 일부로서 지방정부가 더 많은 조세수입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이 결과 국가재정 수입 중 중앙정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 한때 30% 이하로 떨어졌다.
94년 최대 조세 항목인 부가가치세의 75%를 중앙정부 수입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분세제(分稅制)를 실시한 목적은 중앙정부의 재정수입 확대에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조세수입은 전체의 50% 이하 수준이다. 중앙정부의 세입부족은 국가재정 지출의 15%를 초과하는 재정적자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더욱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중앙정부 재정수입의 비중이 한때 10%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 이것은 재분배를 둘러싼 중앙과 지방, 지방 간 갈등의 중요한 배경이다. 특히 중앙정부가 발달한 지방과 낙후한 지방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지방간 경제격차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별다른 방도를 못 찾고 있다.
지방분권화는 재정뿐 아니라 금융, 무역, 투자, 노동시장 등 각종 영역에서 중앙정부의 통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다시 말해 은행대출, 대외무역, 외국인 투자의 유치와 고급 인재 확보 등을 둘러싼 지방정부의 간섭과 치열한 경쟁은 중앙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되는 데 커다란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이와 함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라 요구되는 국제적 기준들이 지방의 저항에 부딪혀 관철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통제력 약화·정치 불안정 초래
지방분권화로 인한 경제적 문제는 90년대 초 본격화한 중복건설(重複建設)과 과열경제가 대표적이다. 중복건설은 각 지방정부가 같거나 비슷한 경제분야를 경쟁적으로 육성, 건설함에 따라 초래된 국가적 차원의 자원낭비와 효율성 저하를 말한다. 중앙정부의 거시 통제가 마비되면서 나타난 중복건설은 현재까지도 중국경제를 괴롭히고 있는 과열경제의 중요한 원인이다. 상당수 지방정부는 세수확대를 목적으로 음반 불법복제와 가짜 상품 제조업체를 비호하는 등 지적재산권 침해에도 앞장서는 상황이다.
지방분권화는 중앙정부의 정치적 리더십에도 새로운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 중앙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적 권위가 약해지면서 지역적인 요소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이것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통치 스타일에서도 나타났다. 상하이(上海)시 당 서기였던 그는 89년 당 총서기로 발탁된 후 상하이 출신들을 발탁해 속칭 상하이방(上海幇)을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지역적 요소가 강화되면서 지방적 수준에서도 엘리트의 현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지방 지도자들은 대부분 현지 출신이거나 현지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이러한 현상은 출신지역 임용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상피제(相避制)와 같은 전통적인 통제수단이 관철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현지인의 기용은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지역 내부의 인적·조직적 공고화로 인해 중앙의 정치적 통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중앙―지방 관계를 확립하는 것은 WTO 가입에 따라 더욱 절박한 과제가 됐다. 중국이 WTO 가입 조약에서 약속한 각종 무역장벽 철폐가 지방 차원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무역분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지방 관계의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향후 중국 정치개혁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김 영 진 (金永鎭)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차이나 핸드북
중국 전문가들은 흔히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다"는 말을 한다. 중앙과 지방 간 경제적 분권화가 기형적으로 이뤄져 각 지방, 특히 성(省)급 지방정부가 마치 독립 관세지역처럼 행동한다는 뜻이다.
국가보다는 개별 지방의 이익을 우선한 데서 발생한 이같은 현상은 '제후경제'로 불린다. 마치 봉건시대 제후처럼 각 지방정부가 반독립적 경제권력을 행사함에 따라 중앙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이 관철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다.
지방보호주의는 중서부 지역이 특히 심하다. 발전된 동부 연안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지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서 유입되는 상품에 대해 갖가지 명목의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외지 기업의 진출에 대해서도 공장설립 인·허가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 기업이 부당함을 제소하더라도 지역 사법기관들이 지방정부의 통제 아래 있어 승소하기는 어렵다.
폐해는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거리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에 대해서도 등록지가 외지일 경우에는 높은 교통세를 부과해 지역 내 버스회사를 보호하기도 한다.
지방보호주의가 횡행하는 이유는 중앙정부가 지방 관리의 승진에 지역경제 발전을 주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역 내 기업이 파산할 경우 초래되는 세수 감소와 실업자 시위를 예방하는 것도 목적의 하나다. 나아가 지방보호주의는 특혜를 노리는 기업과 지방정부 간 유착 등 부패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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