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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마무리 투수

입력
200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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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은 극단적이다. 한 쪽에서는 위기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위기는 커녕 잘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후자의 '위기 불감증'을 걱정하고, 후자는 전자의 '과민증'을 비난한다. 경제 상황 인식이 요즈음처럼 크게 다른 경우는 드물었을 것이다. 모든 사물은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인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경제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경제에 관한 논쟁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논쟁에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쟁은 차라리 하지 않았던 것만 못하게 된다.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얼마 전 '핏대'를 냈다. 그는 한 강연회에서 "성장률 외환보유액 등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일부 '색깔이 의심스런' 교수들이 현재 경제 상태를 외환 위기 당시와 비슷하다는 식으로 비판하고 있다"며 "개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지식인 중산층이 '개혁 피로 증후군'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전 부총리는 이전에 다른 강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고 거품 우려가 적은데도 언론과 학계에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런 주장이 우리를 슬프고 불안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 부총리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간다. 한국은 외환 위기를 조기에 훌륭하게 극복해 'IMF 우등생'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그 이후 정보통신(IT) 산업의 부진과 테러 및 대 테러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져있는데도 굳세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하고 있는데 왜 시비를 거느냐에 대한 불만이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 경제가 좋다는 칭찬이 많은데, 국내에 들어오면 국회 가서 기합 받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어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미 오래 전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 부총리의 언행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정권 임기 말의 경제 총수로서 처신이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위치는 '개혁 성과의 전도사'가 아닌, 야구로 말하자면 '마무리 투수'인 것이다. 경기 막판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패전 처리용이 아닌 이상 어떻게 하든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포수가 요구하는 공을 던져야 한다. 마무리 투수가 자신의 구질(球質)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의 생각대로 공을 뿌렸다가는 팀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마무리 투수는 던질 수 있는 공의 수가 많지가 않아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마무리 투수가 선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 부총리의 최근 발언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 속에서 독선과 아집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비판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있어야 하겠지만, '색깔론'을 들먹이거나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저항의식이 체질화해 정부 정책은 무조건 비판하고 본다"는 언론에 대한 지적은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전 부총리는 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밖에서는 높은데 안에서는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정치적인 역학 관계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즐기는 학자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경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국민들이다. 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이 곧 경제 실상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한 4대 부문의 개혁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다른 나라는 이 정도인데 라는 상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당초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현재 필요한 것은 깔끔히 마무리할 수 있는 투수다.

이 상 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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