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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5)송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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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5)송골매

입력
200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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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MBC 대학가요제는 당시 음악 좀 한다 하는 대학생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만한 소식이었다. 학사 가수가 뉴스가 되던 시절, 방송국에서 대학생들만의 무대를 마련해준다니? 1회 대회가 전파를 타자 이듬해부터 참가자가 줄을 이었다. TBC도 비슷한 성격의 해변가요제를 만들었다. 배철수(사진)가 이끌던 항공대의 활주로와 구창모의 홍익대 밴드 블랙 테트라도 그 중 하나였다. 블랙 테트라는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구름과 나'로 대상을 탔고, 활주로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한달 뒤 활주로는 대학가요제에서도 '탈춤'으로 은상을 탔다.초기 두 가요제는 특히 록 밴드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은 록이야말로 대학생들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는 게 배철수(49)의 분석이다. 실제로 8군 무대 출신들이 대마초로 묶이면서 록 밴드는 대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가요제가 생기면서 축제 때 외국 곡을 부르는 정도였던 캠퍼스 밴드들은 비로소 창작곡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직업 가수의 기회도 잡게 되었다. 배철수는 활주로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79년 4인조 송골매를 만들어 '세상만사'가 실린 데뷔 음반을 냈다. 그리고 군에 입대할 멤버가 생기자 해변가요제 이후 친구처럼 지내던 구창모(48, 드라마 수출업체 MNI 대표)를 보컬로 받아들이고 김정선(기타) 배철수(기타) 오승동(드럼) 이봉환(키보드) 김상복(베이스)으로 6인조 진용을 갖췄다. 82년 2집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송골매는 '모두 다 사랑하리'가 연속 히트하면서 구창모가 탈퇴하는 84년말까지 그야말로 최고였다.

송골매는 록 밴드임에도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과 기성세대에게도 인기를 누렸다. 흔치 않은 록 밴드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처럼' 지극히 대중적인 노래를 불렀다. 작곡자인 구창모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디스코를 염두에 두고 편곡했다"고 말한다. 구창모나 이봉환은 소녀 팬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였다. 모든 것이 방송에 잘 맞았다.

"시대적 상황과 잘 맞아 떨어졌다"는 구창모의 말도 맞지만 "방송에 끌려 다닌 측면이 없지 않다"는 배철수의 말도 일리가 있다. 대학생 출신답게 국악과 록의 접목을 시도하거나 노랫말에 의미를 담고자 하는 노력들은 방송용 노래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젊음의 행진' '영 일레븐' 등 막 생겨나기 시작한 젊은이용 프로그램에서는 록 밴드라기보다는 보이 밴드 노릇을 해야 했다. 배철수의 말대로 "록은 록이되 미디어에 적응한 록을 한 셈"이다. 그저 음악이 좋아 기타를 잡고 밴드로 모였던 순진한 70년대 대학생, 방송국이 대마초 파동으로 출연시킬 가수가 줄어들자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만든 대학가요제를 발판 삼아 스타가 된 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80년대 초반 반짝했던 캠퍼스 록 밴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송골매는 록 밴드가 흔치 않던 80년대 중반 록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80년대의 하이스쿨 밴드에게 송골매의 레퍼토리는 마치 이전 시대의 딥 퍼플 등 외국 유명 밴드의 것과도 같았다. 송골매가 신중현, 산울림에 이어 올 7월 인디 밴드들로부터 헌정음반을 받은 것도 이런 역사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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