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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충청도에 떠넘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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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충청도에 떠넘기지 말자

입력
200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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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표가 이번 대선을 결정한다.' 요즘 양산되고 있는 언론의 대선 관련 보도와 논평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다. 충청 유권자들이 지역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현명하고 양심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는 주문도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그런 주문의 선의를 존중하면서도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적극적인 사고를 해보자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영호남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불가피한 걸로 간주하면서 충청권에만 지역주의를 초월한 투표를 해달라는 주문이 부당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자.

"종필씨만 불쌍하지. 쯧쯧. 배신이나 당하고. 언제는 충청도 보구 멍청도라고 하더니 이제는 핫바지라고 했다면서유. 경상도도 뭉치구 전라도도 뭉치는데, 우리 충청도라고 가만 있을 수 있나유. 안 그래유? "

1995년 어느 월간지의 '충청권 민심 기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소개된 한 대전 시민의 말이다. 감히 누가 이 시민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영호남이 똘똘 뭉치는 건 당연하다는 듯 체념하면서 충청도 사람들에게만 뭉치지 말라니, 그게 말이 되나? 또 충청도 사람들이 뭉치면 영호남 사람들이 뭉치는 것보다 더 욕을 해대니, 그게 말이 되나?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역주의 청산'이 선거의제로 거의 다루어지질 않고 있다. 영호남 사람들은 왜 선거 때만 되면 뭉치는가? 그들은 미친 사람들인가? 아닐 게다. 그렇다면 왜 그러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특정 지역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표를 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 지역과 그 지역 출신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돌아간다는 건 모든 국민이 믿어 의심치 않는 상식이다. 이는 역대 정권들이 입증시킨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상식과 사실을 외면하면서 '지역감정 버리라'고 주문하는 건 대(對)국민 사기극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특정 지역과 그 지역 출신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게끔 모든 인사와 예산 배분 과정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할 때에 비로소 지역주의 투표도 사라질 것이다. 그건 정책의 소관이다. 특정 지역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후보의 구두 선언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유권자들은 귀신같이 알고 있다.

사정이 그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 토론회에선 후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인사와 예산 배분 과정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에 대한 질문도 없고 답변도 없다. 후보들이 앞 다투어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정교하고 세밀한 정책 대안들을 제시한다 해도 수십년간 속아온 유권자들을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아예 그걸 거론조차 하지 않으니 무슨 수로 지역주의를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 놓고선 충청도 유권자들에게만 지역주의 청산의 책임을 떠넘긴다면, 이건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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