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세상살이는 의사결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고 대사일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썩은 동아줄을 잡느냐 튼튼한 동아줄을 낚아채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의 성패여부가 판가름 난다.일반적으로 감독을 헤드코치(head coach)라고 부르는데 반해 야구는 매니저(manager)라고 호칭한다. "왜 그럴까"라고 자문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야구감독은 관리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프로야구 초창기에 야구감독은 구단주와 감독을 병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감독보다 구단주로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전술전략적 능력보다 팀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감독의 첫째 덕목이었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업무구분이 명확해져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감독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야구감독은 관리자로서 임무가 다른 어느 종목 지도자보다 많다.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지 못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덕아웃에서 경기를 앞둔 감독을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라면 저 감독은 눈이 서너개쯤 되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게 된다. 분명 자기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틈에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리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트시즌을 지켜보면서 좋은 감독이 되려면 뛰어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1996년 해태가 현대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김응용 해태감독은 이호성을 4번타자로 기용했다. 4차전까지 13타수 1안타. 이호성은 0점짜리 4번타자였던 셈이다. 주위에서 말이 많았지만 김응용 감독은 요지부동이었다. 이호성만한 4번타자감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김 감독도 속내가 편할 리 없었겠지만 이호성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리즈 전적 2승2패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해태는 5차전에서 3-1로 이기고 한국시리즈 9번째 우승의 발판을 마련한다. 5차전 승리의 주역은 다름아닌 이호성이었다. 4차전까지 고작 1안타에 그쳤던 이호성은 1-0으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5차전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투런홈런을 터뜨려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의심이 나면 기용하지 말고 기용했으면 의심하지 마라.' 야구감독이 철칙으로 여기는 불문율 중 하나다. 감독이 믿고 있다고 확신하는 선수가 120%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하지만 감독의 눈밖에 난 선수가 제기량을 뽐내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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