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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오늘 중간선거/뜨거운 혼전… 차가운 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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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오늘 중간선거/뜨거운 혼전… 차가운 표심

입력
200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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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보루임을 자임하는 미국의 선거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법선(法選) 대통령이란 비아냥을 받았던 2000년 대선 이후 처음 치러지는 5일 중간선거가 그때보다 더 차가워진 유권자들의 무관심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공화·민주 양당의 정강정책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는 유권자는 10명 중 4명이 채 되지 않고, 투표하겠다는 사람도 3분의 1에 불과해 대의(代議)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이슈가 없다

유권자들의 불신과 무관심을 조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과 비전의 부재이다. 미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경제, 대 이라크 확전, 테러위협에 대해 분명하고 소신있게 정견을 내놓는 후보자를 찾기 어렵다. 아무도 이런 민감한 문제를 꺼내려 하지 않아 "누구를 찍어도 달라질 게 없다" 는 냉소주의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50 대 50으로 상·하원을 완벽하게 양분하고 있는 의석 분포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양당 간 희미해진 색깔 차이가 이같은 황금분할을 낳았지만 다수당의 지위에서 한 석도 여유가 없다 보니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무하는 흑색 선거

자기를 감추려 하다 보니 결국 상대 후보 흠집내기가 가장 유력한 유세 전략으로 등장했다. 각 후보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사들인 TV 유세를 통해 상대방을 비방하고 있다. 뉴저지주 상원의원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인 로버트 토리첼리 민주당 의원의 부패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더그 포레스타 공화당 후보는 토리첼리 의원이 중도사퇴하자 '네거티브 캠페인'의 전형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아이오와 같은 조그만 주에서는 투표 일주일 전 TV 광고가 이미 동이 났다.

▶Money Talks―최악의 금권선거

이번 중간선거는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뿌려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역사적인'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양당이 새 법의 발효시점을 중간선거 이후로 결정한 데서 예견됐듯 대선 못지않은 최고의 돈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돈 있는 기업가 출신, 자금동원력이 월등한 현역 의원이 각종 유세매체를 싹쓸이 하는 불공정 게임은 선거자금에 제한을 두지 않은 데서 초래된 모습이다.

▶왜곡되는 민심

전문가들은 일반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투표율 하락 차원을 넘어 민심까지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하층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는 대신 기득권층인 부유층과 유력한 이익단체들의 투표성향은 이들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총기협회(NRA)나 미국은퇴자협회(AARP)와 같이 막대한 로비력을 갖춘 단체들이 자신들에게 걸맞은 투표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라지는 유권자'라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하버드대의 토머스 패터슨 박사는 민심이 선거에 등을 돌리는 이유로 흑색·금권선거 외에 지루할 정도로 긴 유세 기간, 다른 민주국가보다 훨씬 까다로운 유권자 등록 절차, 매체의 공공성 상실 등을 들면서 "인터넷의 발전으로 선거유세의 조잡함, 주변화가 앞으로 더 심해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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