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남편의 당돌하고 어린 연인 때문에 혼란을 맞은 여자,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현실을 피하기 위해 시간만 나면 잠 속으로 도피하는 여자, 이미흔!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여주인공은 소재가 '불륜'이니 만큼 본능에 충실하고 어느 정도의 노출이 따라야만 했던 그야말로 특별하고 용감한 캐스팅을 필요로 했다. "유두는 절대로 보이면 안되고, 엉덩이는 천으로 가려야 하고, 섹스신에는 대역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도, "하겠다"는 것만으로도 두말없이 도장을 받아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었다. 그러나 캐스팅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녀가 감독에게 남긴 말은 일반적인 우려를 벗어나 있었다. "벗는 건 오히려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의 사랑과 가슴 깊은 곳의 상처를 끄집어 내는 일이 더 두려워요."
감독은 단번에 그녀를 선택했고 김윤진은 그렇게 미흔이 됐다. '쉬리'의 여전사나 사랑하는 남자를 끝까지 묵묵히 지키는 '단적비연수'의 그녀는 여주인공의 새로운 유행을 선도했다. 두 남자를 양손에 쥐고 흔드는 '아이언 팜'과 '예스터데이'등을 성공 혹은 실패로 통과하면서 기존의 캐릭터와는 틀을 달리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이민시절, 수줍어했고 남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했던 생활의 변화는 중3때 뮤지컬 주인공을 따내면서 시작되었고, 현재 한국 여배우의 좁았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지 벗었다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될 수 없는 그는 "나쁜 여자네"와 "저런 사랑 있을 수 있다"라는 극단의 평가로 왕복달리기 중이다.
오랜 고민 끝에 결심한 '밀애'의 촬영이 시작되기 전 스태프에게 티셔츠를 맞춰 일일이 나눠주며 파이팅을 외쳤던 그녀다. 운동을 통해 평소에도 몸매를 가꾸어 오던 노력도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진 그녀의 몸은 객석으로부터 탄성이 터져나올 정도. 알고 보니 베드신이 있기 전 감독을 찾아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기 몸을 보여주고 카메라를 통해 보여질 몸을 미리 준비하자고 했다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원작과 인터넷을 통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흔의 이야기를 읽고 과감히 도전한 그녀의 진심이 과연 의도된 섹스라는 화제성에 가려질지, 이 가을 여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진정한 사랑이 될지 관객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보여지는 것 말고 그 이상의 진실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컬럼니스트 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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