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과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의 동시 사표수리는 인권을 국정지표와 업적으로 내세우는 현 정부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구타로 사망한 사건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면서, 현 정부가 스스로를 '인권 정부'로 자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일생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왔으며 현 정부의 제1 지향점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고 말한 데서 이런 입장이 잘 읽혀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침통한 심경을 금할 수 없으며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작은 실책조차 묵과하지 않는 무한정쟁의 대선국면이 검찰 수뇌부 경질을 강요한 측면도 없지 않다.
검찰 수뇌부가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 민주당은 물론 다른 대선주자 진영에서도 줄기차게 물고늘어질 게 분명한 이상, 미리 시비의 대상을 없앴다고 볼 수 있다.
1987년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 때와는 달리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고, 검사 개인의 '과욕'이 빚은 참사라는 점에서 검찰 수뇌부 문책을 반대하는 견해도 상당했다.
청와대에서조차 "9·11 테러 사건 때 미 행정부에서 물러난 고위직이 있느냐. 문책이 능사가 아니다"는 반대론이 있었다. 이날 오전 이명재 총장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을 때, 검찰 일각에서는 "총장이 물러난다면 조직의 안정을 위해 장관은 남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책임론을 놓고 한나라당은 김 장관 쪽에, 민주당은 이 총장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현실에서 이 총장만 문책한다면 정치권에서 "호남 장관만 보호한다"는 공격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런 점을 고려했음을 시인했으며 "후임 인선에서도 지역성과 정파성이 비중 있게 고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의 사표제출 시기를 놓고도 해석이 엇갈렸다.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깨끗한 처신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자신만 결연한 모습을 보이면 누가 뒷처리를 하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엄존하고 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동반 퇴진에 이처럼 복잡한 배경과 해석이 깔려있지만, 이번 조치는 결과적으로 긍정적 효과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조직폭력배의 인권도 중시돼야 한다는 당위론은 적어도 검찰 등 권력기관의 권력남용이나 국가기관의 폭력을 제어하도록 전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평가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