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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경남 남해도 "에코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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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경남 남해도 "에코파크"

입력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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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풀(수초)이 어떻게 구정물을 이렇게 맑은 물로 만들 수 있어요?" "선생님, 지렁이가 음식쓰레기를 먹어치운대요!" 지난달 30일 낮 경남 남해도의 환경공원 '에코파크(Eco-Park)'.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연신 질문을 퍼부었다. 하수종말처리장과 음식물쓰레기처리시설, 위생(분뇨)처리장 등 이른바 혐오시설을 한 곳에 모아둔 이곳이 남해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각종 환경기초시설에다 수초·골재를 이용한 자연습지 학습장 등 다양한 환경시설을 갖춰 마치 수변(水邊)공원처럼 꾸며놓았다.

연중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따뜻한 남쪽나라' 남해도가 국내 최초의 '생태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끼고 보석처럼 펼쳐진 68개의 섬으로 이뤄진 남해는 청정해역과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했지만 1980년대 후반 바다 건너편에 광양제철소와 하동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공해의 섬'으로 전락했다.

"공장폐수에 의한 수질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조류 방향이 바뀌면서 개펄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주민들은 공해와 폐수로 섬과 바다가 점차 황폐화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섬 지키기에 팔을 걷어 부쳤다. 군도 '21세기 꿈의 관광 남해' 실현은 환경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정부와 도를 상대로 예산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결국 1997년 환경부로부터 환경시범자치단체로 지정받아 317억원의 국비와 100억원의 도비를 따낸 군은 먼저 섬내 각종 오염시설을 모아 생태학습장으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업시행 초기 곳곳에서 주민들의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돈이면 길을 더 넓히고 돈벌이를 위해 관광지를 개발해야지 무슨 놈의 환경시설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 말이고…."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착공 5년여 만인 지난 4월 남해읍 남변리 138 일대에 에코파크가 탄생하자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장 이후 소문이 퍼지면서 매달 3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등 남해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됐다.

에코파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국내 최초로 지렁이를 이용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시설. (주)지렁이와 환경 한인구(韓麟九·39) 운영소장은 "음식물 쓰레기를 불순물 분리와 세척 등의 사전단계를 거쳐 34개의 대형 지렁이 사육통에 넣으면 지렁이가 쓰레기를 먹어 치우고 똥을 만든다"고 말했다. 지렁이 똥은 유기비료로 군내 환경농업지구에 무료로 제공된다. 하루 처리용량은 8.6톤으로 군내에서 하루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 4톤을 처리하고도 남는다.

바로 옆 닭 사육장에서는 1,000여 마리의 닭이 하루 3∼4톤의 음식물쓰레기를 먹어 치우며 100여 개의 알을 낳는다. 계란은 매일 사회복지시설에 보내진다.

발걸음을 옮기면 습지(濕地)식물원을 연상시키는 생태하수처리장이 나온다. 최종 방류수를 모아 만든 연못은 창포, 부레옥잠 등 온갖 수초로 뒤덮여 있고 그 속에는 20여 마리의 잉어가 노닐고 있다. 이 연못은 생활하수가 200여m의 꾸불꾸불한 수로를 지나 1m 두께의 모래·자갈층을 흐르면서 자연 정화된 물이 고여 만들어졌다. 하루 30여 톤을 처리하는 이 하수처리장은 경남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도 기계식 처리시설 보다 정화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같은 생태하수처리장은 상주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금잔마을 등 5개 마을에서 가동 중이며 바닷가 100여 개 마을 전체에 설치될 예정이다.

진주에서 두 자녀와 함께 환경학습을 왔다는 송지영(宋智英·39)씨는 "TV나 책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쏟아내는 생활하수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며 "에코파크 견학과 차로 섬 일주도로를 한바퀴 도는 것 자체가 멋진 생태교육이 됐다"고 말했다.

남해도에서 섬 살리기 운동으로 펼쳐지는 사업은 현재 30여가지. 모두 생태섬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사업들이다.

삼동면 봉화리 산 519 일대 8만2,500평에는 나비의 부화에서부터 성장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나비전시관과 나비온실 등 사계절 자연학습장 조성이 한창이다. 농어촌마을을 상징하는 마을회관은 지붕을 '?'자 모양으로 경사지게 만들어 미관이 좋은 것은 물론 지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전통건축양식인 박공식으로 짓는다.

설천면 노량마을에는 전통 목조건물 형태에 태양열 난방을 채택한 친환경적 설계의 생태주택 시범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도로변 버스정류장은 남해대교 등 지역 명물을 형상화해 다양하게 꾸몄고, 도로변에는 토종 야생화를 심어 섬 전체를 꽃으로 치장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서 군 단위로는 유일하게 덴마크팀 본선 준비캠프를 유치해 전국적인 관심을 끈 '사계절 푸른잔디구장'(9개)도 녹색도시 조성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섬을 관통하는 20여 개 하천은 수생식물과 휴식공간을 겸비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도로 확·포장 시에는 동물들의 생태이동통로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남해군 임봉택(林鳳澤·47) 환경관리팀장은 "주민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진 것이 이 사업의 가장 큰 수확"이라며 "자연환경이 살아있는 생태섬은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남해=이동렬기자 dylee@hk.co.kr

■ 무공해 "다랭이 마을

설흘산(해발 485m)이 바다로 내리지르는 45도 경사의 비탈에 100층이 넘는 계단식 논을 일구어 놓은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

남해도 남쪽 끝 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해안까지 급경사여서 오래 전부터 산비탈을 깎아내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으로 만든 다랑이 논 때문에 일명 '다랭이(다랑이의 남해 사투리)마을'로 불린다.

제각각 뻗어나간 작은 논길 때문에 트랙터나 경운기는 꿈도 꿀 수 없고 소와 쟁기가 유일한 농사도구이지만 주민들은 조상들의 삶의 터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데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

1990년 부산에서 시집왔다는 이춘경(李春慶·39)씨는 "처음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2,000여 평 남짓한 다랭이 논을 일구며 일곱 식구가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마을환경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마을 양쪽에 물이 흐른다'는 마을 이름(가천·加川)에서 보듯 물 걱정이 없어 마늘과 벼를 번갈아 심는 2모작을 하고 있으며 해풍의 영향으로 병해충 발생률이 낮아 친환경농업이 가능하다.

개울에 아직도 참게, 얼레지, 용담, 가마우지 등이 서식할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해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마을로 지정됐으며 농촌진흥청에서도 농촌 전통테마마을로 선정, 지원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새해 일출제나 여름철에 간간히 농가민박을 실시했으나 4월부터는 휴일을 이용한 농촌체험프로그램을 개발, 연중 운영하고 있다.

이장 권정도(權正道·56)씨는 "무공해 생태마을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원형을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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