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의사회가 지난해 전국 50∼59세 여성 1,2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53.9%)이 폐경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의 예방과 증세 완화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 폐경으로 인해 상실감을 느끼고 우울해지고 늙었다는 등과 같이 서글픈 느낌만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 현재 78세인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은 2020년 82세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이 50세이니 인생의 3분의 1은 폐경 상태로 보내게 되는 셈이 된다. 대한폐경학회가 제정한 폐경의 달(11월)을 맞아 폐경 이후 건강한 삶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25∼50%의 여성만 치료 필요
폐경은 난소에서 난자의 필수 재료인 난포가 고갈되면서 더 이상 배란이 되지 않는 상태다. 이렇게 되면 난포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몸 곳곳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폐경기 증상은 발생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먼저 폐경 전후 3∼4년간은 안면홍조, 야간 발한, 불면증 등 신체적 이상과 함께 우울증, 신경과민,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긴장, 짜증, 의욕상실, 자신감 상실 같은 심리적 증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폐경 후 1∼2년 정도가 지나면 질 위축증과 성교통, 요도증후군, 성욕감퇴, 피부위축, 관절통, 자궁탈출증, 요실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폐경 후 7∼8년 후면 골다공증과 뇌졸중,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심장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신체적, 정신적 이상 증상을 겪는 여성은 갱년기 여성의 25∼50% 정도에 불과하며, 이에 대한 치료는 정도와 시기에 따라 다르다. 을지의대 을지병원 산부인과 박은주 교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적당한 운동, 식이요법 같은 방법으로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르몬 대체요법(HRT) 등 약물치료가 필요한 여성도 있다"고 말했다.
■폐경기 증후군 극복요령
폐경기를 무사히 넘기려면 우선 폐경을 여성으로서의 '끝'이 아니라 '자유'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걷기, 등산, 조깅, 테니스, 자전거 타기, 줄넘기, 에어로빅 같은 유산소운동을 해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강병문 교수는 "운동시간은 처음에는 30∼40분 정도 하다가 점차 늘려 60분 가량 지속하고 운동강도는 최대 운동능력의 60∼70% 수준이 무난하다"고 말했다.
음식은 단백질과 지방, 미네랄, 탄수화물 등 호르몬 형성에 도움이 되는 각종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특히 30대 이후에는 우유와 멸치, 시금치 등 칼슘이 많이 든 음식을 섭취해야 폐경에 따르는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콩과 두부등 콩 제품은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천연 호르몬(이소플라본)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폐경기 여성들에게는 가장 좋은 음식이다. 실제 콩으로 만든 음식을 많이 섭취한 여성들은 골밀도가 높고 각종 폐경 증세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는 연구가 속속 발표됐다.
식이요법과 함께 운동, 약물치료 등도 병행해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정훈 교수는 "콩에 많이 함유된 이소플라본은 보조제일 뿐, 치료용 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자두와 딸기, 복숭아, 양배추, 사과, 아스파라거스 등 야채와 과일도 체내 여성호르몬을 증가시키는 음식이므로 많이 섭취하는 게 좋다.
■성생활로 폐경기 극복
폐경기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는 적극적인 성생활이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성생활은 뇌의 전두엽을 자극해 뇌의 노화와 건망증 진행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엔도르핀 분비를 늘려 우울증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차병원 산부인과 안명옥 교수는 "'폐경=성적욕구 감퇴'라는 생각은 단지 선입견일 뿐, 심지어 폐경 이후에도 성적 욕구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폐경기에 성기능이 저하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교통 때문이다.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질의 위축, 건조감, 잦은 질염 등으로 성교통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원활한 성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교통으로 인한 거부감이 있더라도 성교 횟수를 늘리고 성적 충동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행위 전에 따뜻한 물로 목욕하거나 국소적인 윤활유를 성교 직전에 사용하는 게 좋다. 굳이 성교를 하지 않더라도 포옹, 전희, 마사지 등을 통해 성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도 있다.
한때 '폐경 여성을 위한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과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발표로 폐경기 여성들이 호르몬 대체요법을 꺼린 적도 있다. 그러나 호르몬 대체요법을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삼성제일병원 내과 한인권 교수는 "폐경기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한 호르몬 대체요법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기 때문에 계속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폐경에 대한 몇가지 질문
아기를 많이 낳은 여성은 폐경이 빨리 온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폐경연령은 50세다. 여러 연구 결과, 폐경은 출산 횟수, 초경 연령, 사회경제적 여건, 인종, 지역, 신장, 체중 등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흡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여성은 비흡연 여성보다 폐경이 1∼2년 더 먼저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경이 되면 성욕이 감퇴한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 질이 위축되고 건조해져 성교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성에 대한 관심이 저하된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성생활은 폐경기 증후군 극복에 도움이 된다.
호르몬 대체요법을 하면 살이 찐다?
에스트로겐을 투여한다고 해서 체중이 늘지는 않는다. 연구 결과, 호르몬 대체요법은 체중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복부 체지방 증가를 예방해 체중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고됐다.
폐경이 되면 잠이 줄어든다?
폐경이 되면 에스트로겐이 줄어들어 안면홍조가 나타난다. 안면홍조는 특히 밤에 자주 나타나며 흥분, 불안감 등의 증상을 동반해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만든다.
40세 이전에 조기 폐경이 되면 치료할 수 있다?
폐경이 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다만 호르몬 대체요법으로 적절히 치료해 폐경에 따르는 이상 증상을 예방할 수 있을 뿐이다.
<도움말=장스여성병원 이인식 원장>도움말=장스여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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