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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인대회 참가 두 작가 "외국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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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인대회 참가 두 작가 "외국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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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1일∼11월 1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문학인대회'에 주목할 만한 재외한국인 작가 두 명이 참가했다. 2002년 뉴베리상 수상자인 재미한국인 동화작가 린다 수 박(42)과 2001년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자인 재일한국인 소설가 현월(玄月·37)이다. '세계 속의 한국문학'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이들은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저마다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문학은 "한국인이라는 자의식을 넘어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뉴베리상 수상 린다 수 박

2002년 뉴베리상을 수상한 린다 수 박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도서관협회(ALA)가 그 해 가장 뛰어난 동화작가에게 수상하는 뉴베리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동문학상이다.

방한 소감을 묻자 그는 "내가 아는 한국은 사진과 책과 TV를 통한 것이었다. 한국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니 꿈이 이루어졌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상 발표 이후 솔직히 글은 한 줄도 쓸 수 없었다"고 말한다. 곳곳에서 인터뷰와 초청강연이 쇄도했다. 작품을 쓰지 못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앞서의 수상자들에게서 "수상 후 한해동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뒤에야 안심이 됐다. 그는 "내년 6월 이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동화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뉴베리상 수상작 '사금파리 한 조각'(최근 서울문화사에서 번역, 출간됐다)은 12세기 고려를 배경으로 도공을 꿈꾸는 소년의 노력을 그린 동화이다. 그는 이전에 동화 '널뛰는 소녀'와 '연싸움꾼들'을 출간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두 작품을 쓰다가 한국이 12세기에 중국을 능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청자를 만들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그는 '사금파리 한 조각'의 창작 동기를 밝힌다. 그토록 우수하다는 고려청자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서 자료를 모은 것이 동화의 바탕이 됐다.

사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그에게 뿌리깊은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시아인을 뭉뚱그려 생각한다. 어릴 때는 이 점이 상당히 괴로웠다. 나는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정작 한국인의 특성을 모른다는 것 말이다."

다섯 살 무렵 미국인 친구가 그에게 중국인이냐고, 일본인이냐고 묻는 질문에 "난 장로교인이야"라고 대답했단다. 한국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는 공부하기 시작했다.

뉴베리상 수상은 작가만의 기쁨이 아니었다. "미국에는 한국인 입양아가 1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나의 열렬한 애독자이다." 독자들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이 뉴베리상을 타게 돼 자부심이 생긴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한국 문화에 대해 알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느끼면서 작가는 감동받았다.

린다 수 박은 그러나 한국인의 문제에만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는 정서다. 언제 어디에서 살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눌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소설을 읽은 한 미국 소녀가 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강도들이 화병을 깨뜨렸을 때 미칠 것 같았어요. 그저 재미 때문에 한 일이라는 걸 알았을 때 분통이 터졌습니다."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 소녀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린다 수 박의 소망이다.

■ 재일 소설가 현월

이제 현월에게 한국은 더 이상 추상적인 곳이 아니다. 대구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으며 좀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했다.

현월에게는 소중한 변화다.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보다 '재일한국인 사회에서 제주도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을 먼저 갖게 된 그이다. "한국은 지역차별이 심한 나라이고, 그것은 일본에 와서도 행해진다.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재일한국인의 부모는 자식에게 같은 나라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경상도나 전라도 출신의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 남자와 결혼할 정도라면 일본인과 하라고." 제주도 출신 부모에게서 난 그에게 모국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한국이 아니라 제주도였다. 민족차별이 아닌 지역차별부터 겪은 현월이 이날 말한 것은 '같은 민족'인 한국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한국인 중에는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교과서 문제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신사 참배 등에 민감해진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지금의 일본은 자포자기할 만한 기운조차 없으니까. 수십 년 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일본은 지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데 급급할 것이다."

그의 방한에 맞춰 중편 '나쁜 소문'과 '땅거미'를 묶은 '나쁜 소문'(문학동네 발행)이 나온다. 표제작은 '뼈다귀'라는 남자를 둘러싼 '나쁜 소문'이 그를 규정해 버리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뼈다귀'는 재일한국인이지만 그가 묘사하는 것은 재일동포의 정체성이 아니다. 현월이 통찰한 것은 집단이 인간에게 가하는 잔인한 폭력이었다.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를 담되, 그릇으로 재일동포를 택했다. 대부분의 그의 소설이 그렇다. 이를 두고 현월은 "나는 알고 있는 것만 쓴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글을 쓰는가,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명료하게 답한다. "주제를 정해놓고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나니까 어떤 문제 의식이 담겨졌는지를 알게 된다. 재일한국인을 등장인물로 삼는 이유는, 내가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작업은 현월을 '재일한국인 문학'의 울타리에 가둬놓지 않는다. 그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인간 문제를 형상화한다. 현월은 현재 천황을 숭배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주인공 청년도 역시 재일동포이지만 작가가 쓰는 소설은 또다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는 '무엇'을 담을 것이다. 그 '무엇'은 현월 자신도 작품을 완성한 뒤에야 알게 될 것이다.

/대구=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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