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딸린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공부만 하던 대학원 시절, 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앉아서 서서 누워서 심지어는 걸어 다니면서도 책 읽기에 몰입했던 그 무렵이 나는 그립고 또 그립다. 그때 만난 책 한 권. 최순우 선생의 '한국미 한국의 마음'(지식산업사, 1980). 이 책은 당시 국악을 문화로 이해하는 공부에 열중하던 내게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이 책은 도자기와 그림 가구 등 우리나라 미술품을 사진과 글로 소개한 것인데, 저자의 글이 얼마나 다감하고 은근하던지, 나는 몇 번이나 읽던 책을 덮고 박물관을 찾곤 했었다. 가슴이 울컥 치미는 미술품의 감동을 직접 맛보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책과 친해지는 사이 나는 우리나라의 미술작품에 대한 미감과 함께 알고 싶었던 한국의 문화 공부에 상당한 진전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우리나라 미술작품에 대해 이런 글을 써서 내 마음을 움직이듯이 나도 우리 음악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국악을 어렵고 낯설게 여기는 풍토를 안타까이 여기던 터라, 언젠가 내가 우리음악 속을 어지간히 알게 된다면 이렇게 친근하고 다감하게 우리음악 얘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왜 잡문 쓰는데 시간 쓰느냐는 주변 어른들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달콤한 국악 글쓰기'에 매달렸다. 방송의 국악 프로그램 작가 노릇을 하는 동안에는 누군가 내 얘기를 듣고 국악연주회나 음반가게로 달려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나는 이 책과 인연이 없었다. 1985년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책방에서 사라진 뒤였고, 누군가 출판사에 연락하면 구할 수 있다기에 아는 이에게 부탁을 했더니, 달랑 한 권 남은 책을 자기가 샀노라는 얘기만 듣고 말았다. 지금도 가끔씩 인터넷 헌책방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어를 쳐 보지만 아직도 이 책은 내 차지가 되지 않고 있다. 책 읽기에 몰입하던 시절이 그립고 그리운 것처럼 내 소유가 되지 않은 채,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 책의 이미지도 애틋하게 남아있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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