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클레어 지음 김태유·허은녕 옮김 세종연구원 발행 1만6,000원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된다. 50개 이상의 나라에서 수천만명의 군인이 동원돼 5,500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런데 2차대전이 에너지 전쟁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
1차 대전 후 독일 일본 등이 재무장하고 다시 세력을 확대하자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은 1940, 41년 독일 일본 등에 석유금수조치를 선포한다. 미국 동인도제도에 석유 수요의 대부분을 의존하던 일본과, 루마니아에서 석유의 절반 이상을 들여오던 독일은 비상이 걸렸다. 결국 독일은 1939년 개전과 동시에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점령하고 1942년 말부터 43년 초 북아프리카 석유지대를 확보했으며 일본은 1941년 진주만을 공격하고 동남아 유전지대부터 일본 열도에 이르는 석유 수송망을 확보하려 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2차 대전이 석유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5월 미국서 발간된 '자원의 지배'(RESOURCE WARS)는 지구상 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 미래의 전쟁은 점차 고갈되고 있는 천연 자원을 둘러싼 다툼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다. 저자는 미국 앰허스트 햄프셔대학의 평화 및 세계안보 프로그램 책임자로 제3세계 국제분쟁의 전문가다.
중동을 포함,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이 겉으로는 민족적 종교적 갈등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원의 소유와 개발 권리를 둘러싼 정부간, 정부와 주민의 싸움이라는 게 책의 주장이다. 책이 지난해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을 계기로 크게 각광받은 것도 이런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
책은 우선 석유 생산지 가운데 대규모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페르시아만을 꼽는다.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는데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 향후 수십년간 각국이 석유 확보를 위해 이 지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이 지역은 경쟁 세력, 종교적 분파,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아 과거에도 수없이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이런 분쟁은 석유공급을 위태롭게 할 수 있고 외부 세력의 개입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은 이 지역 석유가 서방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나라는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하지만 미국은 페르시아만 석유 수송이 봉쇄될 것에 대비, 최근 카스피해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앙아시아 에너지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기반 시설과 송유관을 건설했으며 군사를 배치했다. 이 지역은 페르시아만 다음으로 석유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카스피해 북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가만 있을 리 없다. 러시아는 많은 병력을 카스피해 쪽으로 이동시켰고 인근 아제르바이잔 등에 석유를 러시아 남쪽을 통해 보내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자 김태유 서울대 공대 교수는 "책의 논리를 적용하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이나,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계획 그리고 체첸 반군에 대한 러시아의 강경 대응도 석유와 관련한 국가적 이해가 배경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수자원. 그 중 한 곳이 나일강 유역이다. 나일강은 하류에 이집트가, 상류에 에티오피아 수단 앙골라 등이 있다. 이집트는 인구의 대부분이 나일강 유역에 살고 있으며 나라의 복지와 생존을 위해 나일강의 통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나일강 유역 나라의 인구는 1998년 2억66만명에서 2025년 3억42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분쟁 가능성을 높여준다. 상류의 국가가 늘어날 인구에게 식량을 공급하려면 농지의 관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이 있는 요르단강, 이라크 시리아 터키가 있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도 파키스탄이 있는 인더스강 유역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는 이미 정치 종교 인종 이념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런 요인이 수자원 분쟁을 부추길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나라 역시 인구가 1998년 11억2,360만명에서 2025년 15억9,91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일강 유역에서 미국 프랑스제 최신형 전투기 수백대를 보유,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이집트와 달리, 이들 나라는 잠재 군사력이 서로 만만치 않아 분쟁의 소지가 크다고.
다이아몬드 귀금속 목재를 둘러싼 갈등도 오래 전부터 있었고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앙골라는 내전이 수십년간 지속되고 있는데 이념 대결을 벌인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석유와 다이아몬드 공급권에 대한 갈등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시에라리온은 반군이 다이아몬드 광산 통제권의 확보를 주요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보르네오에서는 벌채를 둘러싸고 1990년대 말부터 원주민 다야크족이 정착민을 죽이고 거주지에 주기적으로 불을 질렀는데 벌채가 계속되는 한 반복될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국제 기구 설립을 포함한 국가간의 협조를 강조한다. 정확한 재고를 파악하고 한정된 자원을 동등하게 분배하며 대체 에너지 개발과 산업화 과정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라도 세계적인 협조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원 갈등이 상존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저자는 그러나 "패배한 측에 적대감을 일으켜 더 큰 분쟁을 낳고, 자원 낭비를 부추기는 무력 사용보다는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묻는다. 인류는 자원 경쟁의 길로 나아갈 지, 협조적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할 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협조체제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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