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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南신의주 유동 박시봉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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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南신의주 유동 박시봉方

입력
200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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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80년대 말까지 우리 문학에서 사라진 시인이었다. 재북·월북·납북문인 해금조치로 우리와 다시 해후한 시인 중, 그는 정지용 이용악과 함께 맨 앞줄에 설 시인이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선망했던 그는 특유의 북방정서를 토속적 언어로 노래한 빼어난 서정시인이었다. 소설과 번역에서의 업적도 많다. 그의 작품 중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란 긴 시가 있다. '박시봉'은 셋집 주인인 듯하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로 시작되는 이 시는 춥고 누추한 셋방을 우수에 찬 시선으로 이리저리 훑으며, 자신에서 비롯된 슬픔과 어리석음을 자책하고 번민한다. 며칠간의 지독한 고뇌와 한탄, 절망이 한 차례 지나간 뒤 마침내 평온하고 정갈한 마음에 이른다.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일제징용을 피해 만주로 떠돌던 백석은 광복 후 귀국하여 한동안 신의주에 머물렀다. 이 시는 '근대 자본주의 물결 속에 개인의 외로움과 덧없음을 노래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백석이 헤매던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에는 정말로 자본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이 경제를 끌어올리고 개방을 선도할 신의주 특구를 지정한 것이다. 그러나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이 중국 당국에 연행되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특구 바람도 주춤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 광복 때까지 사용되던 신의주의 '유동'이라는 지명도 사라져 버렸다. 현재 '류상동(柳上洞)'이라는 동이 있으나, 그곳이 옛 유동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지명도 지명이지만, 탁월한 시인 백석의 사망시기도 혼란스럽다. 61년 '돌아온 사람' 등 시 3편이 '조선문학'에 발표된 후 숙청됐다는 설이 있고, 63년에 사망했다고도 들린다. 또 95년 타계했다는 얘기도 있다. 북의 개방 조치가 백석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안부와 생사를 하루빨리 아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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