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여성패션 '국가대표 기업'인 한섬이 남성복 '타임 옴므'를 시장에 내놓았을 때 주변에서는 무성한 말들이 오갔다. 한섬측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아우르는 토털패션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제품 라인을 다양화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경쟁사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여성 브랜드로 각인된 '타임'을 남성복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마인'(1988년 출시)에서 시작해 '시스템'(90년 출시), '타임'(93년 출시), '에스제이'(97년 출시) 등에 이르기까지 브랜드를 내놓기만 하면 100% 대박을 터뜨린 한섬이 하는 신사업이니 어지간한 계산은 이미 끝났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던 일. 역시 타임 옴므는 숱한 우려와 의구심을 뒤로 하고 1개 매장 연매출이 17억원을 넘는 남성복 명품으로 성장했다.
■한섬의 고민
롯데백화점이 루이비통, 구찌와 같은 세계적인 명품을 제쳐두고 가장 좋은 매장 자리를 물색해줄 정도로 대우받던 한섬에게 딱 하나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남성복 브랜드의 부재였다. 남성복의 고급화로 시장규모는 해마다 커지는 데다 98∼99년에는 벤처 열풍이 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션 수요가 일어 한섬의 조급증은 더해만 갔다. 게다가 한섬이 98년 한해 동안 벌인 시장조사를 종합해본 결과, 남성복 시장에는 널찍한 무주공산(無主空山)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 남성복 시장이 아르마니 등 외국 명품의 초고가 제품과 국내 대기업의 중가제품으로 정확히 양분돼 있던 것. 두 제품군 사이에 때 묻지 않고 남아있던 영역은 전문직 종사자, 금융계 여피족, 젊은 사업가 등을 위한 브랜드였다.
■타임 옴므, 런칭하다
한섬은 마침내 98년 12월 정재봉 사장을 비롯한 상품기획, 디자인, 생산, 영업 파트 등의 팀장이 모두 참석한 전체 기획회의에서 남성복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남성복에도 타임의 명품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되 대량생산을 지양한다. 볼륨이 커지면 망하기도 쉽다."라는 남성복 런칭의 대명제를 제시했다.
한섬 남성복의 이름은 타임에 남성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옴므를 더해 타임 옴므로 정해졌다. 한섬은 이어 전국의 25∼35세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섬이 만드는 남성복을 입을 의향이 있는지', '고급 소재와 최신 디자인을 적용해 외국 명품의 80% 가격까지 치고 올라오는 국산 브랜드를 만들면 사줄건지'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99년 1년간 지리하게 실시해 소비자의 의향도 파악하고 한섬 남성복의 이미지도 심는 고단수를 폈다.
정 사장은 "한꺼번에 왁자지껄 떠들어 분위기를 띄우면 '싸구려' 냄새만 난다"고 잘라말했다. 타임 옴므 런칭 D-데이는 2000년 3월. 남성복 매출 호조세와 99년 중반부터 시작된 경기회복 무드의 절정기가 만나는 때를 노린 것이다.
■타임의 여성 마니아=남성복 구매파워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의 27평 타임 옴므 매장은 2000년 3월 오픈 당시 월 매출 3억6,000만원을 기록, 주위를 경악시켰다. 이웃한 다른 남성복 매장의 월매출은 3,000만원 이하.
타임 옴므 런칭 직전에 서울 강남의 타임 최우수 고객 1,500여명에게 타임 옴므의 홍보책자를 일제히 발송해 '한다리 건너' 그들의 남편과 남자친구를 움직인 작전이 적중한 것이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의 성공은 강남 중산층의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한섬이 '쇼핑, 그 중에서도 옷을 사는 일은 여성 불변의 취미이자 특권'이라는 점에 착안, 남성이 아니라 중산층 여성을 공략한 결과다. 요즘도 타임 옴므의 매장에는 유난히 부부, 애인, 모자 등 커플고객이 많다.
■타임 옴므의 눈부신 성장
타임 옴므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171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50억원 가까이 불어날 전망이다. 또 출시 첫해인 2000년(48억원)에 비해서는 4배 이상 증가했다.
전국의 매장이 10개인 점을 감안하면 1개 매장당 평균 매출은 17억1,000만원으로 '누님' 브랜드인 마인(15억3,000만원), 시스템(11억6,000만원), 타임(22억원), 에스제이(10억3,000만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한섬 마케팅팀 서갑수 과장은 "명품의 존재 이유는 고객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데 있다"며 "타임 옴므는 품질과 디자인, 고객 충성도 등 3박자를 적절히 유지했기 때문에 최고 국산 남성복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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