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지울 수 없는 슬픈 기억이 있다. 한 때 우리의 순정한 처녀들은 정신대라는 이름에 속아 일본 군대위안부로 끌려가 죽음보다 치욕적인 세월을 견뎌야 했다. 우리의 꿈 많던 청년들은 일본군에게 징용 당하거나 머나먼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가 노예살이로 그들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식민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우리의 풋풋한 여성들은 가난을 이기지 못해 이 땅에 진주한 미군 기지촌으로 '양공주'가 되어 흘러 다녀야 했다. 그들 중에는 귀국하는 미군의 거짓 결혼 약속에 속아 혼자서 사생아를 낳고 하염없는 세월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있었다. 낯선 외모가 낙인이 되어버린 혼혈아와 그의 어머니들은 이 사회의 또 다른 소외계층으로 남아야 했다.남의 나라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여성들을 수수방관해야 하는 우리는 자괴감에 휩싸이고 분노에 떨었지만, 우리에게는 힘이 없었다. 아무도 힘없는 자의 분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후 그 설움에 한풀이라도 하듯 우리는 경제발전을 이루어 힘을 키웠다. 그러나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우리 군인과 기술자 중 몇몇이 우리가 비방하던 미군과 똑같은 과오를 베트남 사람들에게 저지르고 돌아왔다. 그들이 방기한 베트남인 아내와 자식들이 지금도 한국인 아버지를 미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강자에게 당한 폭력을 약자에게 씌우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인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 땅에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임금체불은 물론 체형까지 감행하는 악덕 고용주도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폭력은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한다.
미군 기지촌의 한 유흥업소에서 감금 당한 채 윤락을 강요 받던 필리핀 여성 11명이 한국 경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엔터테이너로 일하게 해주겠다는 한국의 불법 인력 송출업자에게 속아 이곳에 온 필리핀 여성들은 매춘을 강요 당했다. 필리핀 대사관은 국제인권기구인 국제이주기구(IOM) 스위스 본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부끄럽다. 어디다 대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말할 것인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의 노예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할 인격이 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들을 낳고 키워준 척박한 조국을 등지고 비정한 상업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 섣불리 뛰어든 것뿐이다. 산 높고 물 설은 남의 나라에 와서 지치고 상처 받은 그들을 이런 식으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조국보다 사정이 조금, 그것도 아주 조금 낫다고 해서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그건 분명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어버린 우리 모습은 보기에 당혹스럽다. 비록 피해자였을 망정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순수했던 지난날의 우리네 마음이 더 그리워진다. 가난도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지만, 오만은 자신은 물론 이웃의 인간성까지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남성들이여, 당신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타국 여성들을 윤락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우리 여성들을 욕보였던 미군에게 분노할 자격이 없다. 군대위안부로 우리 여성들을 수렁에 빠뜨렸던 일본이 자국민을 납치해서 만행을 저지른 북한을 단죄하고 추궁할 자격이 없듯이. 우리는 남의 잘못을 나의 양심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들어야 한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 땅으로 와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턱 높은 미국의 문을 두드리는 우리네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세계화시대에 내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이 이국 땅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진실로 인간다운 대접을 해야 할 것이다.
박 명 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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