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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일기/할로윈데이를 잊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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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일기/할로윈데이를 잊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0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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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월31일)는 할로윈데이였다. 기발한 귀신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사탕 동냥을 다니는 재미있는 서양 풍습은 새로운 것에 늘 혹하고, 엽기 코드에 열광하는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벌써 발렌타인데이 못지않게 사랑받는다. 일부 백화점의 관련 코너가 지나치게 북적인다며 문화사대주의를 걱정하는 컬럼도 있었다.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할로윈은 이방인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덜어준 따뜻한 마을 파티였다. 6년전 가을, 네 식구가 처음 미국땅에 발을 딛였을 때, 집 구하는 일이 꼬여 거의 한달만에 짐을 풀 수 있었다. 남의 땅에 와있음을 실감하며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까지 스산해 오던 무렵, 갑작스레 할로윈데이가 다가왔다.

아이들과 백화점에 들러 마녀 모자랑, 검정 망토랑, 호박 바구니 그리고 이웃 아이들에게 줄 각종 사탕, 초코릿 등을 한아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영어도 잘 못하는 아이들을 어설픈 마녀로 만들어 바구니를 들려 보낸 후 가슴 두근거리고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라니. 서양 사극에 나오는 온갖 귀신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의 동물 분장도 귀엽기만 했다. 가끔은 두세살짜리 아이를 안고 엄마 아빠가 직접 오는 경우도 있었다. ‘혼날래, 사탕줄래’(trick or treat)소리에 문을 열고, 사탕을 한웅큼씩 건네주고…. 이렇게 서너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동네 아이들을 다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일년은 먹고도 남을 사탕을 얻어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아이들도 더 이상 쭈뼛거리는 이방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 우리 옆옆집 있지, 그 집 앞에 관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가까이 가니까 뚜껑이 스르르 열리면서 그 집 아저씨가 쓱 일어나는 거 있지, 기절하는 줄 알았어.” “엄마, 우리 앞집 아줌마 참 괜찮더라. 집집마다 사탕만 주니까 목마를 거라구 음료캔을 나눠주는 거야.” “엄마, 어떤 집은 할로윈 안 좋아하나봐, 아예 불꺼진 집도 있었어.”

내가 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관찰하는 동안, 아이들은 동네 한바퀴를 돌며 이웃들의 개성과 마음씀을 건져왔다. 늦도록 폭죽소리가 끊이지 않던 할로윈의 밤을 보낸 후 우리는 마음을 열고 이웃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아 그 호랑이 변장하고 왔던 아이, 아 그 아기 안고 왔던 엄마, 앗 그 관속에서 나왔다는 아저씨, 점잖게 생기신 분께서…

고대 켈트민족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는 할로윈이 수세기 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요란한 겉모습뒤에 숨은 이웃 화합의 기능때문은 아니었을까. 남의 풍습을 왜 그리워 해, 자책하면서도 10월31일밤이 되면 우리가 보냈던 세 번의 떠들썩한 마을 잔치가 떠오른다.

/이덕규(자유기고가·)기자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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