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부터 서울 강남지역의 주택가격 급등의 진원지 역할을 해온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서울시의 안전진단에서 재건축 유보판정을 받음에 따라 강남권 재건축시장에 한파가 몰아 닥치고 있다.은마아파트의 경우 강남권 재건축시장에서 중층단지를 대표하며 시세형성과정을 주도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안전진단 탈락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전반에 대한 가격하락등의 충격을 몰고 올 전망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대표는 "은마아파트 등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추진해온 주요 아파트의 잇단 안전진단 탈락으로 재건축시장에 낀 거품이 제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서울시가 안전진단 심의를 강화하고 재건축 연한을 최고 40년까지 늘리는 방안도 추진중이어서 향후 아파트 재건축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 어려워 질 가능성이 높다.
안전진단 탈락의 충격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추진아파트는 그동안 시공사만 선정해도 가격이 급등하는 등 아파트 값 폭등을 선도해왔다. 은마아파트 31평형의 경우 연초 3억5,000만∼4억2,000만원 수준에서 형성됐던 가격이 9월초에는 5억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잇따라 세무조사 등 강력한 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소폭의 하락세를 보여왔다. 은마아파트 단지내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안전진단 탈락으로 큰 폭의 가격 하락세가 불가피할 것같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개포시영아파트의 경우 심의결과 발표직후 매매가격이 2,000만∼3,000만원가량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5%이상 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또한 조만간 안전진단 심의를 받게 될 80년대초 준공된 개포·고덕 택지개발지구내 아파트단지와 과천 아파트 단지, 강남권 중층단지, 강동구 둔촌 주공단지 등도 안전진단 통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저밀도지구·안전진단 통과 단지 반사이익 전문가들은 그러나 재건축이 확실한 저밀도지구와 안전진단을 통과하거나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단지는 오히려 수혜를 볼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저밀도지구는 시기가 문제일뿐 재건축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다.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했거나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단지도 마찬가지. 경기가 경착륙만 하지 않는다면 강남권 기존 아파트나 분양권값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재건축을 통한 새 아파트 공급이 끊기면 기존 아파트의 희소가치는 올라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신도시 건설 및 강북 뉴타운 개발 같은 공급확대책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재건축 억제에 따른 수급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재건축 요건 강화… 통과 더 힘들듯
서울 강남구 개포시영아파트에 이어 은마아파트도 재건축이 불허됨에 따라 앞으로 다른 아파트들도 재건축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은마아파트는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대표하며 시세 형성과정을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안전진단 탈락은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다른 단지도 동일하게 적용
강남구는 개포시영이나 은마아파트에 적용한 안전진단 평가기준을 다른 단지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안전진단 심의를 받게 되는 개포주공2·4단지, 일원대우 등도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또 재건축 추진중인 반포, 잠원, 압구정·역삼동 등의 고밀도아파트 단지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재건축 불가판정은 자치단체장의 고유권한이며 안전진단 결과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며 "일부 주민들이 사업성 추구나 재산권 행사 차원에서 마구잡이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행태에 제동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8월 정부가 밝힌 재건축 억제 대책이 은마아파트를 통해 확실히 효과를 나타냈다"며 "혹시나 정부 방침이 바뀌어 안전진단 심의가 완화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사라짐에 따라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 하락세가 증폭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재건축 요건 더 강화
내년 3월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면 재건축 요건이 더욱 강화된다. 이 법에선 재건축 구역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고 시공사 선정을 안전진단과 조합설립 인가 이후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는 단지별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시·도지사가 재건축구역을 도시계획법에 따라 사전에 지정한 뒤에야 추진위원회 설립이 가능해진다.
또 안전진단도 대폭 강화돼 구조안전에 문제가 있는 단지에 대해서만 재건축을 허용하고 필요한 경우 시·도지사가 안전진단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다. 부실 안전진단업체에 대해서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에 서울시는 재건축 가능한 건물연한을 현행 20년에서 40년 이상으로 대폭 늘리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가 3월부터 강남구를 제외한 나머지 구청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재건축안전진단 사전평가 결과, 9월말까지 심의된 113건 중 재건축 판정은 10건에 불과했다. 정밀안전진단 대상 19건, 유지 및 보수관리 판정 56건, 반려가 28건을 차지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은마아파트 주민들 표정
은마아파트가 정밀안전진단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30일 오전.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 사무실에 모여든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입을 모으며 심의위원회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주민들은 "이번 결정을 내린 심의위원들을 이 아파트에 한 번 살아보게 해야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한지 알 것"이라며 "구청으로 쳐들어가서 시위를 해서라도 우리의 뜻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소리치는 등 강경 입장을 보였다.
▶중개업소 매도 문의 이어져
겉으로는 '법적 대응'을 외치면서도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매수자를 문의하는 등 동요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C부동산중개소 대표 김모(58)씨는 "오늘 하루만 10여명의 조합원들이 가격을 문의했다"며 "정부의 집값안정대책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동요하는 조합원들이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집값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반상회까지 열며 버텨오던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이번 결정을 사실상의 '재건축 불가'로 받아들이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은마아파트 건너편 선경아파트 주민 박모(43)씨는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 다시 정부가 부양책으로 돌아설 것으로 믿어 지금까지 집을 팔지 않고 있었다"며 "이번 결정으로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한 만큼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게 집을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불가 번복은 어려울 듯
이미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은 뒤에도 집회신고까지 하고 구청의 결정에 강경하게 맞섰던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시영아파트 주민들도 이번 결정에 낙담하는 표정을 보였다. 주민 전모(45)씨는 "이번 결정으로 재건축 불가 판정의 번복은 물건너간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도곡동 신화부동산 대표 김모(51)씨는 "은마아파트가 강남 집값 폭등의 진앙지였던 만큼 이번 결정으로 이제는 집값 하락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더욱이 강북 개발 등이 발표돼 부동산 자금이 대부분 강북으로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은마아파트 주민의 60%에 이르는 세입자들은 조심스럽게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주민 김모(46)씨는 "실제 살아보면 주차장이 좁은 것 외에는 큰 불편을 못느끼겠다"며 "조합들도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고 재보수 등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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