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강물, 모든 창조주의 막을 수 없는 흐름. 사물은 순식간에 존재를 잃고 다른 사물에게 그 자리를 내준다. 오직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로 컴필레이션 영화 '텐 미니츠 트럼펫(Ten Minutes Older: the Trumpet)은 시작한다. 트럼펫 소리에 일렁이는 강물이 나타날 때마다 감독들의 이름이 뒤를 잇는다.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메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스, 독일의 빔 벤더스와 베르너 헤어조그, 미국의 짐 자무쉬와 스파이크 리, 중국의 첸 카이거. 현대영화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감독들로 이 영화로 올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일찌감치 초대받아 참석했다.
7명의 감독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 10분. 주제는 시간, 소재는 전적으로 감독들에게 맡겼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감독들의 7가지 색깔이 비교의 재미를 선사한다. 카우리스메키와 에리스, 헤어조그는 사색적이다.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시간의 실재, 시간으로 인한 변화에 진지하게 접근한다.
상대적으로 미국 감독들은 보다 직접적이다. 짐 자무쉬는 밤샘 촬영 중인 여배우가 트레일러에서 보내는 10분의 휴식시간을, 스파이크 리는 부시와 고어의 대통령 선거전 마지막 10분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약물을 과다 복용한 남자가 병원까지 12마일을 환각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으로 시간을 공간적 거리로 치환환 빔 벤더스나 과거의 기억 속에 사는 한 정신병자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시간으로 엮어낸 첸 카이거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시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을 실감하지 못하는 인간들. 다른 이들의 시간은 나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이라도 생각하고 느끼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하는 낯설지만 정직한 맛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가고 10분짜리 영화 7편이 반드시 물리적인 의미의 70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11월 8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전체관람가.
컴필레이션의 모범답안 같은 '텐 미니츠 올더'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겸 프로듀서인 니콜라스 맥클린톡이 1975년 라트비아 다큐멘터리 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허츠 프랭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에 나섰다. 빔 벤더스와 짐 자무쉬가 가장 먼저 흔쾌히 승락했다. 이어 13명의 감독을 섭외해 7명은 트럼펫으로 나머지 8명은 첼로로 묶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클레어 데니스, 장 뤽 고다르, 마이크 피기스, 마이클 래드포드, 이리 멘젤, 폴커 쉴렌도르프, 이스트반 자보가 참여한 '텐 미니츠 첼로' 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초청작으로 상영했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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