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적발한 1조3,000억원대 가장납입 사건은 사채업자-은행직원-기업체로 이어지는 소위 '벤처게이트'의 왜곡된 자금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루트를 통해 G& G그룹 회장 이용호(李容湖)씨 등은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자본금과 주식 수를 마음대로 늘린 뒤 주가조작이나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발단 및 수사경과
검찰은 최근 S사에 대한 30억원 사기 고소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 회사의 증자자금으로 모 은행 명동역지점에 입금된 3억원이 사채업자 오모(구속)씨의 가장납입 자금이었다는 사실을 확인, 추적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어 명동지점에서 넘어온 거액의 자금을 추가로 확인, 압수수색을 벌여 하루 최고 500억원의 자금을 굴린다는 거물급 사채업자 반재봉(58·구속)씨의 실체를 확인했다. 검찰은 이후 반씨의 계좌 추적을 통해 이용호씨 등 거물급 벤처기업가들의 유상증자 과정에 반씨의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을 속속 밝혀냈다.
■사채업자-기업사냥꾼의 커넥션
반씨 등 사채업자와 기업사냥꾼의 결탁 행태는 몇 가지로 나뉜다.
우선 가장납입 자금과 수수료를 맞바꾸는 수법이다. 실제로 반씨는 이용호씨 등의 상장·등록기업 증자에 920여억원, 5,120개 일반법인 증자에 6,540억원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10억5,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작전자금 제공 사례도 적발됐다. 반씨의 경우 GPS와 대양금고 등 기업의 주식 600여만주를 담보로 잡고 180억여원의 작전 자금을 지원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반씨는 또 델타정보통신에 73억원의 작전 자금을 제공한 뒤 담보주식 140만주를 매도하는 등 직접 시세조종에 참여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가장납입금 제공은 사실상 시세조종 공모를 염두에 둔 행위인 만큼 사채업자들도 대부분 주가조작에까지 개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밖에 사채업자들의 자금이 소규모 법인의 가장납입에 사용돼 딱지어음 남발, 유령회사 설립을 통한 입찰담합 등 후속범죄를 유발한 사례들도 포착됐다.
■은행 직원의 도덕적 해이 심각
일부 은행직원들은 기업들이 별단예금계좌에 주금을 납입할 경우 이자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착안, 거액 유치를 위해 불법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반씨를 전담했던 모 은행 명동지점장 박모(50·구속)씨와 부지점장 김모(46·불구속)씨의 경우 주금 미입금 상태에서 납입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영업시간 이후 계좌이체 수법을 통해 채권자의 가압류를 방해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했다. 이들은 심지어 반씨에 대한 압수수색이 개시되자 187억원의 수표를 입금받아 놓고도 현금입금으로 처리, 계좌추적을 방해하기도 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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