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회에선 정치권과 정부가 벌이는 시끌벅적한 '흥정'이 한창이다. 불법 건축물 양성화, 양도세 감면, 면세유 혜택 연장, 연금액 인상 등 각가지 선심성 법안을 놓고 의원입법으로 밀어붙이려는 측(정치권)과 막아보려는 측(정부)이 설전을 벌인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여야가 따로 없이 지역구나 이익단체의 민원을 법안으로 양산해낸다. "어차피 선심쓰는 것인데 법안은 많이 쏟아내놓고 보자"는 식이다. 정부는 나름대로 이들 선심성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보지만 정권 말기 힘이 빠진 정부로서는 역부족이다. "선심 쓰는 의원들이야 아무 부담 없는 흥정이지만 정부로서는 예산 편중, 정책 난맥 등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장 법안에 문제가 생기면 뒷처리는 결국 정부 몫 아니겠습니까."▶양산되는 의원
입법 지난달 이후 국회에 접수된 법률안 중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된 법안은 93건. 전체 접수 법률안(141건)의 70%에 육박한다. 특히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다달은 10월 중순 이후에는 의원들이 직접 발의한 법안이 하루에도 평균 7∼8건씩 쏟아졌다.
일각에서 "정부 주도 법안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비판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 의원입법이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를 충분한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선심성 법안이라는 점이다. 해당 부처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도입 불가 판정을 내린 해묵은 법안을 다시 꺼내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들의 위생용품(생리대)에 대해 부가세 영세율을 적용하자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여성 단체의 요구가 빗발치자 정부는 검토 끝에 "다른 공산품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의원들은 곧 바로 법안으로 발의했다. 논란이 많은 불법건축물 양성화, 면세유 혜택 연장, 군인보험 연금인상등도 모두 의원입법으로 발의가 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의원 입법이 활성화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처럼 선거 시즌에만 선심성 법안을 쏟아내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작용 크다
군인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3개 공적 연금의 연금액을 대폭 인상해주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인상액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전망.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매년 적자폭이 커지고 있는 마당에 연금액이 인상될 경우 국민들이 부담금 등의 형식으로 짐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며 "결국 국민 세금으로 퇴역 군인이나 퇴직 공무원을 먹여 살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농어민 면세유 혜택 연장 법안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1물(物) 2가(價)'가 형성돼 농어민들이 싸게 유류 제품을 사들여 비싸게 되파는 뒷거래가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 재경부는 이에 따라 "면세유 혜택을 연장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2년 연장도 모자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75%의 감면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불법 건축물 한시 허용안 역시 법안심사소위에서 슬그머니 대형건물로까지 확대돼 서민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오히려 불법 대형 건축물 소유자에게 더 큰 혜택을 준 결과를 낳게 됐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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