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인질극 사태를 통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진 18명의 체첸 여전사는 참혹한 체첸의 인권 상황이 낳은 비극이었다. 미국의 abc 방송은 29일 '검은 옷의 여성들이 테러의 섬뜩한 새 얼굴로 등장했다'며 이들이 체첸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23일 인질 억류 직후 알 자지라 위성방송에 등장한 여전사들은 인질과 세계를 향해 "우리의 죽음에 대한 의지는 당신네 인질들의 살고자 하는 소망보다 훨씬 강하다"고 싸늘하게 말했다.
검은 부르카로 온몸을 가리고 권총을 든 채 온몸에 폭탄을 두른 이들 18명의 모습은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체첸의 잔인한 실정에 익숙한 전문가들조차 "보수적인 체첸 사회 분위기로 볼 때 전선의 맨 앞에 나선 여성 전투원의 모습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인질들에게 공포의 대상도 이들 여전사였다. 인질들은 이들이 인질범 가운데 가장 차갑고 공격적이었다고 증언했다. 노모와 함께 인질로 억류됐다 풀려난 루드밀라 페드얀체바는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약을 요청하자 한 여전사가 자리를 뜨지 말라고 차갑게 명령했다"며 "어머니가 죽어간다고 호소하자 그는 '내 양심에는 가책이 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눈에 거슬리면 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질범은 "너는 오늘 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지난 10년 간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인권 단체들은 열악한 체첸 여성의 삶이 이들을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러시아 병사들의 강간 위험을 피해 젊은 여성이 있는 집마다 은신처를 찾는 게 급선무일 정도로 체첸 여성의 삶은 공포 그 자체"라고 밝혔다. 휴먼라이트 워치는 "남편과 자식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순간 체첸 여성들은 그들을 찾는 동시에 가장의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체첸에서 활동 중인 심리학자 케다 오마르카드지예바는 "여성 인질범들은 아마도 가족들이 러시아군에 의해 잔인하게 처형된 사람들일 것"이라며 10년 간 지속된 무법과 무력감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폭력적인 반응을 촉발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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