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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지리산까지/전라·경상 화합길 따라 바다·강·산 다 만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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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지리산까지/전라·경상 화합길 따라 바다·강·산 다 만나볼까

입력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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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매혹적이다. 다도해를 거쳐 섬진강으로 접어드는 바닷길이 첫째고, 섬진강과 이웃한 19번 국도가 둘째다. 바다에서 강으로, 또 강에서 산으로 향하는 이 두 길은 다도해·한려해상·지리산 국립공원을 모두 품는 보물길인 동시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사이좋게 왔다갔다하는 '동서화합로'이기도 하다.■바다에서 강으로

여수항 주변에는 치열한 역사의 흔적이 널려있다. 연산군 때 수군절도사 이량이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 성을 쌓아 군사훈련을 했다는 국내 유일의 수중석성(水中石城) '장군도'가 항구 한가운데에 버티고 있는가 하면, 눈을 들면 좌우의 완벽한 대칭을 자랑하는 뾰족한 '종고산'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자 산에서 저절로 은은한 종소리와 북소리가 나며 승전을 축하했다는 기특한 산이다.

바다와 강과 산을 아우르는 흔치 않은 여정 때문일까. 여수항을 떠나는 유람선 기적소리에도 설레임과 기쁨이 배어 있다. 울창한 동백림, 하얀 절벽이 상쾌한 조화를 이루는 오동도가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지나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접어든 것이다.

뱃길은 사이좋게 영·호남을 양쪽에 거느린다. 오른쪽은 경남 남해·하동군, 왼쪽은 전남 여수시·구례·광양군을 차례로 거친다. 여천산업단지, 광양 제철소와 하동 화력발전소 등 산업시설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마치 바다에서 산업시찰을 하는 듯 하다.

여수를 떠난지 한시간. 푸르게 일렁이던 바닷물이 연록빛을 띠기 시작하며 잔잔해진다. 섬진강으로 접어든다. 광양대교와 남해고속도로 밑을 지나며 '하동포구 팔십리'의 낭만적인 물길을 감상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뱃길의 중심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 유학길에 오른 청년들로 북적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강둑에 다가서는 흰 조각배, 사각거리는 대나무숲, 고적한 통나무집이 마치 스칸디나비아의 어느 항구에 온 것 같다. 찬바람 맞으며 재첩잡는 아낙네를 보고서야 이곳이 섬진강임을 깨닫는다.

■강에서 산으로

배에서 내려 뭍으로 가면서 섬진강의 서정을 만난다. 19번 국도는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씨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은 길. 역시 뱃길처럼 호남과 영남을 번갈아 가로지르는 데다 섬진강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길이다.

드넓은 백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강가의 모래사장이라기보다는 하얀 모래밭 틈새로 푸른 물결이 스며들며 겨우 섬진강의 명맥을 유지하는 듯하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다. 저자는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 호수의 수면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라고 표현했다. 눈물과 핏빛 수난이 서린 지리산과 풍요의 땅 악양이 맞물려 '토지'가 태어난 것일까.

지금 섬진강은 사계를 모두 품고 있다. 하늘거리는 갈대가 은색으로 빛나는가 하면 열대 산호해안처럼 하얀 모래밭에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짙푸른 송림은 겨울에도 움츠리지 않는 선비의 꼿꼿한 기개를 자랑한다. 하동읍 섬진교를 건너 매화마을로 들어선다. 이른 봄 꽃이 필 때 마을 전체를 부옇게 달뜨게 하던 매화나무에 이제는 거뭇거뭇 단풍이 들었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수백 개의 매실 항아리가 부드럽고 은근한 광택을 내며 잘 익은 포도처럼 송글송글 빛난다.

지리산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 봄이면 벚꽃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벚꽃 대신 발그레한 이파리가 울창한 터널을 이루었다. 벚꽃이든, 단풍이든 이 길을 걷는 연인들의 애정표현은 여전히 열렬하다. 700m고지의 칠불사, 지리산의 가을은 묘하다. 대기는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차갑지만 단풍나무는 이제 갓 붉은 기를 머금었을 뿐이다. 본격적인 단풍철은 11월초. 지리산의 10월에는 여름과 가을이 공존한다.

/여수·하동·구례=글·사진 양은경기자 key@ hk. co. kr

● 여행상품 무엇이 있나

청송여행사(02-853-7787)에서 무박 2일로 여수∼남원간 상품을 판매한다. 밤 10시50분 서울역을 출발, 여수 향일암에서 일출을 본 후 유람선을 타고 섬진강으로 들어와 지리산 쌍계사·칠불사와 남원 광한루를 거쳐 서울로 돌아온다. 클래식과 가곡이 흐르는 로맨틱한 흰 유람선 덕에 '드림세일링'(dream sailing)이라는 그럴듯한 코스명이 붙었다. 어른 8만8,000원. 가는 길에 보성녹차밭과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들른 후 여수에서 1박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유람선 정원은 130명. 매일 출발하지만 주말에는 신청자가 넘쳐 돈 내고도 가기 힘들다.

여수에서 1박을 할 경우 돌산 향일암 근처에 처갓집산장(061-644-7949)을 비롯한 민박집이 여럿 있다. 대부분 이 지역 특산물인 갓김치를 담아 판다. 1㎏에 2만원선. 짭조름한 해풍을 맞고 자란 갓김치가 서울 근교에서 대량 재배되는 갓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알큰하다.

여수시내에는 여객터미널 근처에 '7공주 산장어집'(061-663-1580)을 비롯한 장어골목이 유명하다. 돌산대교 야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신선하고 쫄깃한 감성돔도 일품이다. 다모아횟집(061-644-8181) 등. 자연산 감성돔 1마리(4인기준)가 10만원선이다.

섬진강 경치에 취해 날이 저물었을 경우 지리산에서 1박을 할 수도 있다. 칠불사에서 쌍계사로 내려가는 계곡의 '거목산장'(055-883-1670)을 들러볼 만 하다. 시설이 깨끗하고 성수기에도 3만원 이상 받지 않는다.

지리산에서 자연재배한 고사리와 취나물, 자우 등 8가지 나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비빔밥(1인분 5,000원), 인삼과 대추가 들어가 달큰하고 개운한 동동주가 자랑거리다.

● 일출명소 여수 향일암

여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바로 한려해상 일출의 명소 향일암(사진)이다. 해를 바라본다고 해서 얻은 이름(向日)이다. 돌산섬의 끄트머리인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의 금오산 자락에 있다. 새해 이곳서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연초에는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중턱에 있는 민박집에서도 가파른 돌계단을 20여분간 쉼없이 올라가야 한다. 제 한몸 올라가기도 숨가쁜 이곳에 신라 선덕왕 8년(659년)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수행을 했다.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고 개·보수를 거쳐 오늘의 향일암에 이르렀다.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은 일년에 고작 40일 정도. 하지만 비가 오더라도 갯바위 하나 없이 확 트인 남해의 절경과 거북바위의 진기한 형상을 발 밑에서 굽어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저 살던 용궁을 향해 꿈틀거리고 떠날 듯한 거북. 산신령이 데리고 놀러 왔다 주변 경치에 정신이 홀려 거북만 두고 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거북의 등과 목 부분은 주차장이 들어지면서 모조리 훼손됐다.

대웅전, 관음전, 용궁전 등 이제는 제법 규모있는 절의 품새를 갖춘 건물들도 모조리 바다를 향해 있다. 바위를 헐어 지은 암자여서 바위의 좁은 틈새가 건물과 건물을 잇는 유일한 길이다. 삼성각 난간을 뒤덮고 있는 책 한 권 크기의 돌거북 200여마리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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