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럼 여자들이 살기에 세상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나. 28일 대학로 인켈아트홀 1관에서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페미니즘 연극 '자기만의 방'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성과 창작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강연집을 한국 현실에 맞게 각색(류숙렬)한 이 작품은 여성이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면 돈(경제적 자립)과 자기만의 방(자율적 영역)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이영란(43)의 모노드라마로 1992년 대학로 초연 당시 첫날부터 장사진을 이루며 8개월 간 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이다. 자기만의 방을 찾는 여자들이 겪은 좌절과 고통, 오늘의 현실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적 사고를 맹렬히 비판한 것이 많은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다시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이영란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그렇게 원하던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됐는데, 그걸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드냐"며.
강연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극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대변하는 남성 지식인으로 마손톱(마광수) 김동양(김용옥) 김생명(김지하)을 등장시켜 '꿈을 깨라' '입 닥쳐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맹공을 퍼붓는다. 춘향이 심청이 황진이 허난설헌 등 역사와 고전 속 여성부터 영화 속 여성상, 오늘날 여성들이 부딪치는 문제까지 아우르며 여성에 대한 거짓 신화와 척박한 현실을 폭로한다.
충무로의 잘 나가는 영화감독들도 화살을 피하지 못한다. "장선우 감독은 영화마다 실감나는 강간 장면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에선 여대생이 창녀가 됩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는 지체부자유 여성이 자신을 강간한 범죄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남성들의 강간신화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고 있는 충무로,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첫날 공연은 250석의 객석이 거의 다 찼다. 남성 관객도 30명 쯤 됐다. 공감을 표시하는 박수와 "옳소" 소리, 공격 대상에 대한 야유성 폭소가 이어졌다. 공연 후 배우와 작가, 주최측인 페미니즘 저널 '이프' 관계자 등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남자가 얘기해도 되냐"며 나선 40대 회사원은 "여성 해방을 많이 도와줘야, 아니 같이 이뤄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작가 류숙렬은 "지난 10년 간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근본적인 것은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 재공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사는 집을 바꾸고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은 11월 3일까지 계속된다. (02)708―409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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