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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브라질 사상 첫 좌파대통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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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브라질 사상 첫 좌파대통령에

입력
200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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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브라질 노동당(PT)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일명 룰라) 후보가 27일 대통령에 당선돼 남미 경제대국 브라질의 역사적인 실험이 첫 발을 내디뎠다.룰라 당선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반기를 들고 한때 대외 채무 불이행을 공공연히 외쳤던 노동운동의 선구자다. 그런 룰라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한 브라질을 과연 좌파적 해법을 통해 구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그의 실험은 비슷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남미 대다수 국가에 상당한 의미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룰라는 당선 직후 "룰라가 우리를 구할 것"이라며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하루 24시간 일을 해 유세 기간에 한 약속을 실행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이날 정권인수팀을 구성,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4년 임기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노동운동가에서 대중정치인으로

룰라의 당선은 현 정부의 실정과 그의 대중적 인기 및 극좌파 이미지 탈피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수 대통령의 현 정부가 추진해 온 긴축 재정과 안정 위주의 경제정책은 저성장과 실업률 증가, 빈부 격차 심화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고 성난 민심은 룰라를 선택했다.

지난 3번의 대선에서 룰라의 발목을 잡았던 강성 이미지도 이번에는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룰라는 강성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이번 대선에서 현 정부의 정책과 유사한 중도좌파적인 공약을 내세웠고 기득권층에 가깝고 능력 있는 인물을 부통령 후보 및 주요 참모로 발탁했다.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이미지도 보탬이 됐다.

▶좌파냐 중도냐

룰라의 가장 큰 고민은 중병을 앓고 있는 브라질 경제에 대한 처방이다.

특히 그는 기대감에 들뜬 서민층과 우려와 긴장에 싸인 중산층 및 해외 투자가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그를 대통령에 올려 놓은 주축인 서민층과 좌파 지지자들은 브라질의 문제가 자본주의 자체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으며 정부가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빈곤 격차를 해소하고 내수를 진작시켜 서민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 브라질은 2,600억 달러에 달하는 국가 채무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IMF를 따르자면 적어도 내년까지는 재정 흑자를 늘리는 긴축재정을 지속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 부문 개혁도 필수적이다.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수많은 지지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상당수의 지지자들은 룰라의 이념보다는 배고픈 현실을 타개해 줄 구세주를 원했다는 점에서 조속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위태로운 균형

룰라가 당선 직후 "브라질의 대외 부채를 존중한다"며 채무불이행 선언 등 극단적인 결과를 우려하는 국제 여론을 안심시키는 한편으로 "(IMF 등 국제사회는) 우리가 국민들을 매일 굶주림으로 고생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여운을 남긴 것은 그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분석가들은 룰라가 당분간은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이어가며 안정을 이끌어낸 뒤 차츰 과거 우파 정권과 차별화한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룰라는 누구

'3전 4기'의 의지로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된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일명 룰라)는 역경을 이겨낸 불굴의 노동 전사 출신이면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대중 정치인이다.

이민 출신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룰라는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로 소년기를 보내면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14살 때 금속노동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69년 첫 번째 아내가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얻은 결핵으로 출산 도중 숨진 것을 계기로 노동운동가로 변신했다.

철강노조 지도자로 파업을 주도하면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80년 브라질 노동당(PT)을 결성했고 반(反)군정 민주화운동인 '직접 선거 쟁취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86년 최다 득표로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돼 대중정치인으로 성공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대선에서 내리 3번 고배를 마시면서 좌파 정치인의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계급투쟁보다는 사랑과 평화, 공정성을 강조하며 변신을 시도했다.

섬유 재벌을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앉히고 보수 우파 정치인들과 악수하면서 비토(거부)그룹을 안심시킨 포용정책도 성공전략 중의 하나이다.

/이영섭기자younglee@hk.co.kr

■ 룰라당선…각국 반응

브라질 최초의 좌파 정권 탄생은 경기 침체의 덫에 걸려 있는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브라질과 깊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미국은 룰라의 당선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쪽도 미국이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룰라 당선 확정 직후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라면서 "브라질과 서로 도움이 될 수 있게 일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 전문가들도 우려 반 기대 반의 반응이다. 룰라 당선을 앞두고 브라질 시장에서 긴급히 자금을 회수한 일부 금융기관들은 브라질이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처럼 정치적 요인으로 경제 파탄에 이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낙관적인 견해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룰라에 반대했던 현지 기업가들도 점차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며 "룰라에 대한 우려는 과민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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