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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사진작가 남기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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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사진작가 남기승씨

입력
200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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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사진을 시작한 남기승(71)씨에게 카메라는 정년 이후 가장 좋은 친구가 됐다. 카메라를 메고 전국의 산하를 돌아다니며 야생화 철새 연꽃 등을 필름에 담아온 그는 올 8월 충무로에서 개인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 '노년'의 영상적 의미를 되살리는 그는 "노년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생물교사를 거쳐 동화약품에서 30년간 근무한 내가 카메라를 잡게 된 것은 1965년. 번잡한 회사일을 피해 휴일마다 산을 찾으면서 가까이하게 된 카메라가 평생의 벗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진을 배울 수 있는 교재 하나 제대로 없던 시절, 어렵사리 카메라를 장만한 나는 일본잡지 '아사히카메라'를 직접 주문해 탐독하면서 점차 사진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사진에 매달리게 된 때는 50대 중반. 비슷한 취향의 사람끼리 모여 1990년 사진작가동호회 '광영'을 창립하고 해마다 전시회도 열었다. 정년퇴직할 즈음에 카메라는 나에게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됐다. 어줍잖은 아마추어로 남기 싫어 나름대로 테마를 정해 매달렸다. 한국의 사계, 야생화, 철새, 연꽃 등을 담으려고 어지간한 산이나 강은 다 헤집고 다녔다. 두루미를 찍으려고 일본 북해도를 서너 번이나 다녀왔을 정도다.

사진작가에게도 새를 찍는 것은 고난도에 속하는 분야다. 우선 카메라렌즈가 600㎜를 넘기 때문에 이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철새가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바람이 쌩쌩 부는 야외에 몇 시간이나 꼼짝않고 있어야 하는 것도 힘겹다. 한 겨울 지리산 노고단의 불기 없는 산장에서 담요만 감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 이렇게 고생하면서 신체를 단련한 것이 아직도 건강한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법. 60대로 접어들면서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산행하는 것이 힘겨워져 가까운 데서 소재를 찾기로 했다. 우선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수원시 화성의 아름다움을 담기로 했다. 조선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수원성은 축성법이나 미적 가치가 뛰어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성은 보통 전투목적으로 쌓는데 수원성은 효라는 이념을 토대로 세워졌다는 것도 나를 붙잡았다. 지난해 12월 작업을 시작해 새벽, 땅거미가 질 무렵, 한 밤중, 비오는 날 등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수원의 거의 모든 표정을 필름에 옮겼다.

요즘은 '노년'도 주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초라해지고 볼품없어지지만 얼굴에 새겨진 주름, 검버섯은 우리가 살아온 역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만큼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2000년 5월 남부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관장의 승낙을 받고 다음 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하다시피 했다. 처음 카메라를 들이대니 노인들이 피하고 야단쳤지만 함께 세상얘기를 하고 장기를 두면서 경계심을 허물었다. 그렇게 친구가 된 노인들의 얼굴을 1,000장 정도 찍었다.

원래 '사진은 인물로 시작해서 인물로 끝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물 찍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원래는 올 8월 노인을 테마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준비가 부족해 대신 '수원성' 사진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카메라와 함께 내 노후를 달래주는 또 하나의 친구는 컴퓨터다. 나는 외롭다고 말하는 주변 친구에게 "친구를 하나 사라"고 말한다. 컴퓨터는 거짓말도 하지 않고, 놀고 싶은 만큼 놀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벗인 셈이다. 내가 컴퓨터를 시작한 것은 60대 초반. 사진을 하면서도 '아날로그'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학원에 등록했다. 물론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원에 나가면 젊은 학생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고 한 번 막히면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아 쩔쩔 매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컴퓨터로 모든 사진작업을 한다. 이때까지 찍어둔 사진을 스캔해 자료로 정리하고 홈페이지, CD롬도 직접 만들었다. 첫 습작은 내 고향 충남 당진군의 변천사, 우리 집 족보, 3대에 걸친 사진, 편지 등을 담은 '충절의 고향 당진'. 한국의 사계, 연꽃, 아름다운 노후 등을 모은 CD롬도 만들었다. 포토샵 드림위보 디렉터 등을 이용해 음악도 넣어 만든 CD롬은 내가 보낸 시간의 결정체인 것 같아 자랑스럽다.

이미 나이가 들었거나 앞으로 나이가 들 사람들에게 나는 꼭 '취미'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상대방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바둑이나 골프는 별로다. 주변의 친구가 떠난 뒤에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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