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이로부터 한국을 설명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 답변은 이랬다. "들쭉날쭉하지만 뾰족해요. 싸하지만 감미롭기도 해요. 무척 빠르고 또 아주 느리지요. 기질은 장작불을 태울 때 튀어 오르는 나무 수액처럼 톡톡 타오릅니다. 하지만 그 속마음은 장작에 부어진 기름처럼 아주 따뜻하지요. 이 곳에서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은 마치 두려움 없는 전쟁과도 같지만 또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수반해요. 한국엔 향기가 있어요. 아파트 복도에선 마늘 냄새, 보리차 냄새가 나고 여름 서울의 도로변은 오줌 썩는 냄새로 폭발하지요. 하지만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맹렬한 겨울 산의 추위 속에선 불교적 이상인 '무상'의 향이 나요."어떤 곳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흔히 상투어를 쓰게 된다. 실제 그 곳의 실체를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방금 묘사한 이런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상투적인 한국의 이미지는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사례들도 찾기 쉽다. 아마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남과 북을 가르는 정치적 긴장, 그리고 이를 유발했던 전쟁의 참혹함일 터이다.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더 많은 극단적 긴장과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면 그것은 피튀기는 정쟁의 나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조는 500년간, 아마 아시아의 어느 왕조보다 오랜 수명을 갖고 굴러갔다. 조선왕조의 정치적 시스템은 격렬한 내란, 그리고 500년의 수명을 가능케 한 안정을 동시에 떠받쳤다.
내가 원하는 설명은 '독일인은 냉혈한이고 지나치게 논리적'이라든지, '프랑스인은 늘 반쯤은 사랑에 빠져 있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상투적 표현을 넘어서 있다. 한국인을 표현하려면 늘 동의어와 반의어가 동시에 사용되어야 한다. 한국은 늘, 마치 스스로가 불만스러운 듯이, 자신과의 불화상태에 놓여있다. 한국인은 이러한 싸움, 그리고 투쟁 속에서라야 안도한다. 사실 한국인뿐 아니라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는 누구나 다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의 들쭉날쭉한 풍경처럼, 그리고 된장찌개의 향긋하면서도 톡쏘는 맛처럼, 싸우는 과정에서의 격렬한 엄격함, 그리고 그 안에서 그것을 즐기고 스스로 풍요로워지는 데에 한국인의 특이함이 있는 것 같다.
웨인 드 프레머리 미국인 서울대 국제지역원 석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