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의 경영성적표와 주가를 바꿔놓는다.영화에서 주연 배우 한 사람이 흥행을 좌우하듯 투자자들도 CEO의 경영성과와 투명경영 노력, 주주중시 경영 등을 감안해 투자를 결정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 CEO주가'에도 판도변화가 일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이 수익성 중심의 실속 경영과 주주중시 경영에 힘쓰면서 그동안 CEO주가의 간판 스타로 군림했던 경영자들이 다소 주춤한 반면 새로운 주자들이 부상하고 있다.
주택은행장 시절 주주가치 극대화를 내세우며 국내에서 CEO 주가라는 말을 탄생시킨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올해 '은행권 최고주가'의 자존심을 지키기는 했지만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 행사와 은행권의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순익감소 우려 등으로 CEO주가 단골 1위 자리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내줬다.
지난해 7월 한국전기초자에서 동원그룹 계열의 정보기술(IT) 업체인 EASTEL시스템즈로 옮긴 서두칠 사장은 당시만 해도 그의 퇴진만으로 전기초자의 주가가 반토막나고 EASTEL의 주가는 70%이상 급등하기도 했지만 1년이상 지난 지금 EASTEL은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주가도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다. 셋톱박스의 신화를 만든 휴맥스 변대규 사장,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CEO로 관심을 끌었던 안철수사장도 정보기술(IT)경기 버블붕괴와 주가급락에 밀려 그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POSCO 유상부 회장은 올해 경영실적은 호전됐지만, 주가는 크게 오르지 못해 그동안 줄곧 지켜온 주주중시 상위권 CEO에서 밀려났다.
반면 대표적인 화학 전문 CEO인 노기호 LG화학 사장, 안복현 제일모직 사장, 게임산업의 새 지평을 연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등이 기업 주가를 많이 끌어올린 대표적 CEO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노 사장은 4월 대주주로부터 LG석유화학 주식을 고가 매입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경영실적과 주가관리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거래는 '대주주 이익 챙겨주기'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LG화학의 기업분할 등 지배구조 개선노력과 노 사장의 경영성과 자체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제일모직 안 사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취임 이후 1,780원 하던 주가를 현재 1만4,350원으로 끌어올려 주가상승률 706.18%를 기록했다. 또 제일제당 이재현 부회장은 4월 CJ엔터테인먼트 주식 600만주에 대한 신주인수권 행사를 포기, 900억원의 시세차익을 포기했다. 시장에서는 당시 이부회장의 시세차익 포기결단에 대해 투명 경영에 앞장서는 CEO라며 신뢰감을 표시했다.
동원증권 김광열 기업분석 팀장은 "CEO주가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이 오너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독자적 책임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집단소송제 등이 도입돼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국내에서도 선진국처럼 주가하락 때 이사회에 압력을 넣어 CEO를 경질하는 일도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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