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국이 '선(先) 핵 포기'라는 가이드라인을 정하면서 공이 또다시 북한에 넘겨졌다. 그러나 핵을 대미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북한이 선뜻 호응할 것 같지는 않다.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밝혔듯이 먼저 핵 카드를 포기하는 것은 곧 '발가벗고 대(항)하는' 자충수라는 게 북한의 생각이다.더욱이 한·미·일 3국이 제시한 '기회'와 '경제적 혜택'등 당근은 아직까지 수사(修辭)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핵개발 폐기로 주어지는 반대급부가 구체화할 때까지 지구전 태세를 갖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이 한·중·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채찍을 들 수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오히려 이를 이용할 공산도 있다.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이 27일 "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이 최대 아량의 표시" 라고 선을 그은 것도 나름의 자신감 표출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도 북미간의 '기 싸움'이 상당기간 지속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북한의 고(高)난도 생존게임이 시작됐다" 고 말했다.
그렇다고 시간이 마냥 북한의 편은 아니다. 대미 관계의 난맥상을 방치하고는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경제개혁과 대외관계 개선이 진전될 수 없다. 북한이 어느 때보다 '우리끼리'를 강조하며 남한과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북미관계를 겨냥한 포석일 수 있다. 북한은 남북대화, 북일 수교접촉, 그리고 미국과의 뉴욕채널을 통해 '자주·생존권'과, 미국의 '선 핵 포기' 요구와의 시차(時差)를 좁혀가며 협상의 틀이 마련되기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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