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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다시본다](3)제1부 ②지배엘리트 체제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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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다시본다](3)제1부 ②지배엘리트 체제의 명암

입력
200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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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체제는 당과 국가가 일체화된 특성을 갖고 있다. 이 체제에서는 공산당과 국가기관이 조직적·기능적으로 결합돼 있고, 권력은 공산당과 소수 통치 엘리트로 집중된다. 중국 정치에서 정치 엘리트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마오쩌둥(毛澤東) 시기는 사회주의 국가수립과 사회개조를 최고 국정 목표로 하는 운동의 시대였고, 이를 위해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능력을 갖춘 혁명 간부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빈농·노동자·군인 중에서 교육수준은 낮지만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 통치 엘리트로 충원됐다.

혁명간부에서 기술관료로

반면 경제발전을 목표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춘 새로운 엘리트, 즉 기술관료가 필요했다. 기술관료는 대학에서 이공계 교육을 받고 상당 기간 전문 기술직종에 종사한 후 당·정의 고위직책을 맡은 통치 엘리트들이다.

당 총서기 장쩌민(江澤民·상하이 교통대 전기공학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리펑(李鵬·옌안 자연과학원, 모스크바 유학),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칭화대 전기공학과) 등 3세대 지도자 집단이 이에 속한다. 4세대 지도부의 핵심들인 국가 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칭화대 수리공학과), 부총리 원자바오(溫家寶·베이징 지질학원 지질학과), 쩡칭훙(曾慶紅·베이징 공업학원 자동통제학과), 자칭린(賈慶林·허베이 공학원 전력과), 황쥐(黃菊·칭화대 전기공학과) 등도 마찬가지다.

기술관료들은 80년대 초부터 鄧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간부 세대교체 계획에 의해 조직적으로 충원됐다. 이 계획에 의해 86년까지 전국적으로 약 140만 명의 고위 간부가 현직에서 물러난 반면, 46만 9,000명의 기술관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실력과 비공식적 친분

개혁기 통치 엘리트에게 실력은 필수다. 최소한 대학은 나와야 하고, 졸업 후 20여년 간 중간간부로 각종 업무를 담당하면서 탁월한 실무능력을 인정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에 잘 대처해야 하고 각종 '유혹'에도 잘 견뎌야 한다.

胡 부주석의 발탁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칭화(淸華)대를 졸업한 후 수리분야 엔지니어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共靑團) 간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82년 40세의 나이에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돼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1985), 시장(西藏·티베트) 자치구 당서기(1988)에 임명된 그는 이 지역의 어려운 문제들을 무난히 처리함으로써 정치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89년 티베트 당 서기로 재직하면서 소수민족 시위를 성공적으로 진압함으로써 당 중앙에 자신의 투철한 당성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실력은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혈연·학연·지연 등 비공식적 친분관계를 잘 형성하고, 특히 든든한 후원자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李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자로서 혁명원로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성장할 수 있었다. 江 주석에게는 왕다오한(汪道涵) 전 상하이(上海) 시장의 지원이, 胡 부주석에게는 조직계통의 거물인 쑹핑(宋平)과 鄧의 후원이 있었다.

같은 대학 출신, 같은 지역 근무 사실도 중요한 힘이 된다.

카리스마에서 집단지도체제로

기술관료들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자가 아닌 관료 엘리트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현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최대 수혜자로서 이 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할 뿐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를 일정 기간 희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또 기술관료적 사고방식, 즉 불확정성과 느린 정책 결정을 싫어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보다는 전문적 지식을 중시한다. 따라서 이들이 급격한 정치개혁을 시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기술관료들은 혁명간부들이 이념과 원칙을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실용적, 현실주의적 관점에 입각해서 정책을 결정한다. 또한 이들은 국제적 감각과 개방적인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며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할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앞으로 누가 최고 통치자가 되든 관계없이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다. 기술관료들은 毛나 鄧 세대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개인적 카리스마가 없다. 이들은 이전 세대 지배 엘리트들과 달리 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강한 유대감(동지애)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권력을 분점하고 법과 절차에 근거해 통치하려고 할 것이다. 이들은 또 부족한 민주적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발전에 더욱 매진하고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회주의를 대신하여 민족주의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권력투쟁의 잠재적 불씨

중국 정치체제의 최대 문제는 권력승계의 안정된 제도적 장치가 없고 국민의 참여가 완전히 배제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권력승계는 항상 권력투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제도의 미비는 파벌의 형성과 투쟁을 지속시킨다. 실력 있는 관료도 든든한 후원자 없이는 최고 지배집단에 들어갈 수 없고, 최고통치자도 추종자를 거느리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 정치에서는 파벌이 정치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정치적 소외와 불신이다. 현재 중국 국민들은 권력승계를 '남의 일'로 간주한다. 설사 관심이 있어도 이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통치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에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조영남(趙英男)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차이나 핸드북/정치 1번지 "상하이 방"

중국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벌은 '방(幇)'으로 불린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上海) 출신의 고위 당·정 관료들은 상하이방으로 통한다. 상하이방의 대표적 인물은 정치국의 황쥐(黃菊) 정위원과 쩡칭훙(曾慶紅) 후보위원이 꼽힌다. 이들은 江 주석의 상하이 당 부서기 및 당서기 재임시 발탁되면서 정치적 미래를 보장받았다.

방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개인적 능력과 함께 방의 수장과 장기간에 걸친 인간적 관계가 중시된다. 曾은 뛰어난 기획능력과 대범한 스타일을 바탕으로 당시 상하이 당서기였던 江 주석을 측근에서 보좌했다. 黃은 특유의 친화성을 무기로 江 주석의 환심을 샀다. 黃의 이 같은 스타일에 대해서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曾과 黃은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16전대)에서 江 주석이 퇴진하더라도 당내에서 그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상하이방의 수장으로서 江 주석이 정치적으로 부상하게 된 데도 개인적인 친분이 큰 작용을 했다. 江 주석은 상하이 당 부서기 재임시 겨울을 보내기 위해 상하이로 내려오는 덩샤오핑(鄧小平), 리시엔녠(李先念), 천윈(陳雲) 등 원로와 그 부인들을 극진히 보필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중국에서 인치(人治)가 법치(法治)에 우선하는 경향은 정치적 방의 형성에서 잘 나타난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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