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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고교 평준화 1년/명문高 대신 "이젠 특목高"… 입시광풍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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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고교 평준화 1년/명문高 대신 "이젠 특목高"… 입시광풍은 여전

입력
200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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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들어 가장 추웠던 22일 밤11시 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학원골목. 김이 무럭무럭 솟는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던 아이들은 잠시 후 학원으로 다시 쏟아져 들어갔다. 몇 시까지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한 중3 학생은 뚱해서 답했다. "새벽 2시요." 성남시 분당구의 밤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밤 11시를 넘어서면서 중심가 고입학원 밀집 지역 도로엔 학원 버스와 학생들을 마중 나온 부모들의 자가용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중학교 1학년생 학부모 김화자(42·여)씨는 "매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까지 실어 나르는 엄마도 있는데 이건 고생도 아니다"고 했다.

올해 3월부터 고교 평준화 지역으로 일제히 탈바꿈한 경기 고양시 일산구와 성남시 분당구. 불과 몇 달 전 어린 중학생들에겐 입시 지옥, 학부모들에겐 사교육비 지옥으로 통하던 곳이다. 그러나 평준화를 도입 한지 1년이 됐건만 입시 광풍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특목고가 명문고 자리를 대신 차지하며 평준화는 또 다른 난제를 쏟아놓고 있었다.

■여전한 사교육 광풍

성남시 분당구 A중학교에서는 최근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생들 앞으로 엄한 경고가 떨어졌다. 지난 학기 시험에서 일부 학생들이 시험 보는 것도 귀찮았는지 답안지를 한 번호로 쭉 메웠기 때문이다. 이 학교 교감은 "평준화 후 어차피 '뺑뺑이'라는 생각에 정신자세가 엉망"이라고 혀를 찼다.

교사 H씨는 "평준화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침에 자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이라며 "목표의식 없는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떠밀려 밤늦게까지 학원 수업을 받고 학교에선 존다"며 허탈한 듯 웃었다.

A중학교에선 학년을 가리지 않고 한 반 평균 45명 중 40명이 학원,개인지도 등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적어도 고입 사교육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비웃음 거리가 됐다.

일산 B중 오모 교사는 "아이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무한한 욕심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학생들도 밤늦게까지 학원 특목고반 책상을 지킵니다. 특목고 진학은 한 학교에 기껏 40∼50명인데…."

학원의 '백석고·서현고 반'은 '외고·민사고반'으로 대체됐을 뿐 "평준화 도입으로 잠시 긴장했다"는 고입 학원들은 신도시에서 여전히 '밤의 중학교'였다.

■단점 부각되는 평준화 정책

고양시 일산구 B고 교사들은 "'학력의 하향 평준화'가 예상외로 심각하다"는 말로 평준화 손익계산의 운을 뗐다. "정석수학을 떼고 들어오는 아이와 산수도 안 되는 아이들을 한 반에 몰아넣었는데 수업이 됩니까. 어느 한쪽은 포기 해야죠." "결국 학력 분포를 M자형으로 만들어 위·아래 모든 학생들이 피해보고 말 겁니다."교사들은 할말이 많아 보였다.

성남시 분당구 B고. 평준화 전 하위권 학생들만 몰려들던 '썰렁했던' 학교다. 평준화 수혜로 의욕이 넘쳐날만도 한데 분위기가 여전했다. "평준화라지만 학생들 지망을 받아 배정하다 보니 우수 학생은 별로 없고 평균은 여전히 하위권"이라고 했다.

수학 담당 K교사는 다른 각도에서 평준화 문제를 지적했다. "수준 낮은 학생들이 모였을 때는 초등학교 산수부터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은 죽도 밥도 아니다."또 다른 교사는 "솔직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학기초 학교 배정에 불만이던 우수 학생 30여명이 서울로 전학 갔는데 그들을 잡을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성남시 분당 S고 교사들은 "수업에 만족 못하는 위·아래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대입과외가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L교사는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범생을 볼 수 있는 게 변화라면 변화"라고 덧붙였다. 평준화가 문제점을 드러내기에 8개월은 그리 짧지 않았다.

■여전한 학부모들의 찬반 논란

23일 오후 고양시 일산구 고양교육청에서는 지역 학원총연합회가 주최한 '외국어고 입시설명회'가 열렸다. 300석 자리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선 채 귀를 쫑긋 세운 학부모들로 강당은 후끈 달아올랐다. 설명회가 끝난 뒤 학부모 권혜경(41·여)씨가 불만을 쏟아냈다. "괜히 평준화 해서 얘들이 2시간 버스타고 서울로 통학해야 하니…."그러자 옆 자리의 학부모 정지원(43·여)씨가 웬 뒤퉁스러운 소리냐며 반격했다. "얘들을 봐서는 잘한 거죠. 그때 백석, 백신(고) 못 가면 얼마나 열등감에 시달렸는데요. 교복 색깔로 얘들이 평가 받는다는 게 말이 돼요."

"어차피 3년 뒤에 대학이 갈리는 엄연한 현실이 있는데 그걸 부정 하면 안되죠."(권)

"공부 하나로 인생의 쓴맛을 미리 볼 필요는 없잖아요."(정)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 자존심 때문에 평준화가 된 것 아닌가요."(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두 학부모의 논쟁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학원갈 시간이 되자 자연히 정리됐다.

이 지역에서 평준화가 도입된 가장 큰 명분은 '사교육비' 였고 그 추진력은 신도시 학부모들이 보여준 70% 이상의 지지(2000년 한국교육개발원 설문조사)였다. 하지만 학부모 백영희(45·여)씨는 "고교 배정파문과 평준화 허상을 깨달으면서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평준화 도입에 불만을 품고 중학생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는 학부모 C씨는 "학부모들의 설문조사로 교육정책을 결정하면 명문고 아니라 서울대도 없어질 것"이라며 "인민 재판식 정책 결정이 수월성 교육을 망쳐놓았다"고 흥분했다.

■평준화 1년. 여전히 난해한 퍼즐

경기 수도권을 평준화 지역으로 탈바꿈 시켜 놓는데 견인차 노릇을 했던 교육관련 시민단체들도 여전한 사교육 열풍에 대해서는 "워낙 전국적인 현상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박이선(朴二仙) 참교육학부모회 고양지부 회장은 "그래도 학생·학부모들을 입시 강박감에서 해방시킨 것은 큰 수확"이라고 강조했다.

평준화 제도 도입에 극구 반대했던 전 백석고 교장 이은협(李殷協)씨는 "타지역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평준화 제도를 철학 없이 여론에 따라 도입한 것은 큰 실책"이라며 "제도를 돌릴 수 없다면 다양한 교육목표를 내건 학교와 우수인재를 키울 수 있는 학교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준화 1년. 수도권 신도시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퍼즐을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고양·성남=이동훈기자 dhlee@hk.co.kr

■1974년 첫 도입… 현재 23개市 실시 고교생 68% 평준화高 다녀

고교평준화 정책은 1974년 과열 입시를 해소한다는 취지로 서울과 부산에 처음 도입됐다.

이어 이듬해 대구 인천 광주에서 실시되는 등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평준화 제도를 도입했던 군산 목포 안동 춘천 원주 이리 천안 등은 90년대 들어 비평준화로 돌아갔다. 80년 평준화를 도입했던 익산의 경우 91년 비평준화로 바꿨다가 2000년 다시 평준화로 돌아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0년 들어서는 울산이 새로 평준화를 도입했고, 올해 고양 성남 안양 부천 등 수도권 6개도시가 평준화 울타리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현재 전국에서 평준화를 실시하는 지역은 모두 23개 시다.

평준화 고교 수는 전체 일반계 고교의 50.4%인 626개이며, 학생수는 83만2,001명으로 전체의 68.1% 수준이다.

평준화제도는 중학교 교육 정상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았지만 학력의 하향 평준화와 사학의 자율성 침해로 교육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특히 당초 목표한 사교육비 감소 효과는 없고 오히려 교실붕괴를 낳았다는 주장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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