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에서 '뺄셈정치'와 '덧셈정치'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거철만 되면 원칙 없는 이합집산을 일삼는 풍토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뺄셈정치'도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그간 나타난 한국 선거판의 작동 원리로 보자면 노 후보의 '뺄셈정치' 발상은 정치적 자책골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간 모든 언론과 지식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도 사실상 역설해 온 '정치개혁'의 관점에서 보자면 무원칙하고 무분별한 '세(勢) 불리기'를 근간으로 삼는 '덧셈정치'야말로 한국 정치를 시궁창에 빠트리는 주범이라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유권자들의 못 말리는 이중성에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악성의 거짓말이 한국 국민이 정치 개혁을 바란다는 주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저주를 퍼붓는 데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다. 정치에 대한 비난과 저주는 그들의 취미 생활일 뿐 그들이 진실로 정치 개혁을 바라는 건 아니다. 정말로 정치 개혁이 되면 그들의 취미 생활이 사라질 텐데 그들이 그걸 원하겠는가?
유권자들이 평소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판이 썩었고 대수술을 필요로 할 정도라면 '뺄셈정치'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세 불리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덧셈정치'엔 비난과 저주를 보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중인격을 갖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그들은 갑자기 '원칙'을 말하던 평소 주장을 내던지고 '덧셈정치'에서 '안정'과 '포용력'을 찾으려고 든다. '뺄셈정치'는 '불안'하고 '편협'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다중인격에 비난과 저주를 보내야 할까? 그렇진 않다. 우리 스스로 계몽에 임해야 할 것이다. 먼저 누구를 위한 셈인가 하는 걸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국익의 관점에서 '뺄셈정치'가 '곱셈정치'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 스스로 평소 그렇게 비난과 저주를 보내던 정치인들이 많이 몰린 것에서 도대체 무슨 안정과 포용을 찾겠다는 것인지 자문자답해 봐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기로에 서 있다. 자신들의 힘으로 정치판을 새로 짤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는 선거에선 구태의연한 정치판 논리로 투표에 임해놓고 그 투표의 필연적 결과에 대해 그럴 줄 몰랐다는 듯 또 비난과 저주를 보내는 '누워서 침뱉기 게임'을 계속 할 것인가?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계속 반복해서 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그 지긋지긋한 '누워서 침뱉기 게임'을 그만 두든지 아니면 평소 정치에 비난과 저주를 보내는 취미 생활을 청산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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