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0월29일 샹송가수 조르주 브라생스가 남프랑스 생젤리뒤페스크에서 작고했다. 60세였다. 그의 유해는 사망지에서 가까운 세트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세트는 브라생스의 고향이다. 이 지중해의 항만 도시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은 아마 폴 발레리일 테지만, 그 곳 태생으로 대중에게 가장 열광적인 사랑을 받은 시인은 브라생스일 것이다.가수 브라생스는 시인이었다. 그가 만든 샹송 가사들이 시 못지않은 격조를 지녔다는 점에서 그랬을 뿐 아니라, 그의 예술적 출발점이 실제로 시였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브라생스는 21세 때인 1942년 첫 시집 '칼로물베기'를 낸 시인이었다. 1967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브라생스에게 국가 시문학상을 수여함으로써 프랑스어 선양에 대한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그는 26세에 첫 소설 '달이 문에 귀 기울인다'를낸 소설가이기도 했다.
물론 브라생스는 '우산' '무덤 파는 인부' 등의 앨범으로 세 차례나 디스크 대상을 받은 뛰어난 샹송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그러나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먼저 곡을 쓴 뒤 거기 노래말을 붙이는 여느 작곡가들과 달리, 브라생스는 늘 테이블 앞에 앉아 펜을 굴리며 운문 텍스트를 지어낸 뒤 피아노 앞에 앉아 그 텍스트에 곡을 붙였다. 전통적 의미의 시가 점차 영향력을 잃어감에 따라 앞으로 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대중 가요 가사에 있다고 할 만한데, 그런 의미에서 브라생스는 미래의 시인이었다. 노래꾼을 겸하는 미래의 시인이 사실 '전통적 시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고대 한국 향가의 가인들에서부터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시인들 다수는 노래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첫 문장을 고친다. 1981년 10월29일 시인 조르주 브라생스가 작고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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