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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軍, 빗나간 제식구 감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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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軍, 빗나간 제식구 감싸기

입력
200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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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시께 경기 포천 영북농협 총기강도 사건의 수사본부. 범인 검거에 따른 흥분도 가라앉고 몰려들었던 취재진도 마감시간을 넘겨 느긋해진 분위기 속에서 돌연 욕설섞인 고성이 터져 나왔다. 범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인근 육군 모 군단 헌병대로 보낸 부하 직원의 전화를 받고 격분한 경찰 간부가 내지른 소리였다. "범인조사에 입회를 요청했으나 군이 아예 문도 열어주지 않고 있다"는 보고였다.사실 이번 사건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가장 자주한 넋두리는 "몇 걸음만 나아가면 철조망에 부딪친다"는 것이었다. '철조망'이란 물론 공조수사의 한 축을 맡았던 군이다. 범인 검거 뒤 "단 일주일이면 해결됐을 사건이었다"는 푸념들도 나왔다.

경찰의 불만이 공연한 상대방 깎아 내리기가 아님을 드러내는 사례는 많다.

경찰은 사건 발생 나흘만인 15일 '전모 상사가 범행을 전후해 EF쏘나타를 렌트하는 등 용의점이 있다'는 내용의 첩보를 군에 통보했다. 그러나 군은 며칠 뒤 "전 상사는 알리바이가 입증됐으므로 용의점 없음"이라고 간단한 답신을 보내왔다.

사건 직후 경찰이 배포한 범인 몽타주에는 '30세 초반, 키 177㎝ 정도, 스포츠형 머리, 흰색 운동화 착용' 등 내용이 적시돼 있다. 기막히게도 전 상사는 31세에 키가 178㎝, 스포츠형 머리에 평소 흰색 스포츠화를 즐겨 신는 인물이다.

또 다른 경찰은 "'수사망이 좁혀드니 범인이 자진출두했다'는 군의 설명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아마도 제 식구를 어떻게든 덜 다치게 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냉소했다.

확실히 이번 수사과정에서 보여준 군의 '제 식구 감싸안기'는 도를 넘었다. 범인은 그들이 보호해야 할 민간인에게 총을 쏘아대고 재산을 빼앗은, 전혀 감싸안을 가치가 없는 군인이었다.

/김정호 사회부 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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