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연지 일주일 만에 2,300만원의 매상을 올렸다면 그 가게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서울 안국동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는 하루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가게가 문을 여는 아침 10시반부터 점심시간까지는 손님이 장사진을 쳐서 가게 안에 들어가려면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아름다운 가게는 참여연대의 대안사회연구팀이 분가하여 만들었다. 중고 생활용품을 기증 받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싼값에 제공하고, 이익금은 이웃돕기에 쓰겠다는 소박한 사업이다. 이 소박한 사업에 쟁쟁한 시민운동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뛰어들어 '중고품 복덕방' 이상의 꿈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의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아름다운 가게는 소리없이 우리들의 의식을 바꿔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각자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지나치게 소비하고 소유하려던 욕심에서 해방되고, 그 물건들의 새 주인을 찾아줌으로써 재활용의 정신을 확대하고, 자연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을 키워나가자고 박 변호사는 호소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다양하다. 옷 핸드백 운동화 구두 그릇 문구 책 CD 장난감 작은 가전제품 등이 진열돼 있다. 중고품 뿐 아니라 포장도 뜯지 않은 그릇들과 문구들이 눈에 띈다. 값은 대개 3,000원에서 1만원 정도, 이런 가격으로 2,300만원 매상을 올렸다니 일주일동안 얼마나 많은 손님이 이 가게에 다녀 갔는지 알만하다.
경매 코너도 있다. 1990년에 만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어판 31권이 10만원에서 시작하여 31만원까지 올라가 있다. 골동 3층장에는 30만원이 붙어있다. 앞으로는 이런 색다른 기증품들을 따로 모으고, 명사들의 소장품을 받아서 전시 판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물건이 돌고 돌아서 새 주인을 찾아가는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한 엄마가 자기 아이가 입던 겨울 점퍼를 깨끗이 손질해서 기증했는데, 첫 추위가 몰려 온 날 다른 엄마가 7,000원에 그 옷을 사 갔다. 할머니가 치던 피아노라면서 1927년에 제작된 야마하 피아노를 기증한 분이 있었는데, 누가 그 피아노를 100만원에 사서 '아침이슬'의 작곡자인 김민기씨에게 선물했다. 김민기씨가 기뻐한 만큼 그 기증자도 기뻤을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는 영국의 옥스팜이나 미국의 굿윌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중고 재활용품을 취급하는 체인을 운영하면서 이익금을 자선사업에 쓰고 있다. 유럽지역에 820여 곳의 체인을 갖고 있는 옥스팜은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주로 돕는 세계최대의 자선단체다. 아름다운 가게는 아직 1호점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계속 2호점 3호점을 열면서 자선사업도 확장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가게 사무실에 필요한 물품들은 마침 국세청이 새 집에 입주하면서 안 쓰게 된 사무용품들을 기증 받아 마련했다. 현대자동차는 기증품들을 수거할 트럭을 기증했고, 크린토피아는 무료로 의류 세탁을 해주고 있다. 강남의 미도아파트 부녀회는 정기적으로 물건들을 모아서 기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기 때문에 더 많은 부녀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증품을 보관할 창고와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주말과 퇴근 후에 가게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김영심씨(이대 입학처 근무)는 "손님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고 알뜰살림을 하는 중산층 주부도 있고, 신기한 물건이 있나 보려고 나오는 부자들도 있다. 그 손님들 모두가 이런 가게가 정말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 한 번 왔던 분들이 집에 가서 물건을 챙겨 들고 기증하러 다시 오는 걸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가게라는 한 밀알이 싹을 틔우려 하고 있다. 자기 아이가 입던 옷을 다른 아이들을 위해 깨끗이 손질하는 엄마들,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물건을 정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밀알의 싹을 틔우고 있다. 아름다움에 목말라 하면서 이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려는 사람은 전화 (02)3676-1004로 연락하면 된다. 우선 책 몇 권, 옷 몇 벌을 기증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장명수 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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