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계절의 싱그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연이은 태풍과 엄청난 홍수로 어지러움만 남기고 물러갔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아픈 기억들이 아름다운 단풍과 황금빛 들녘의 풍성함으로 조금은 위로 받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나에게든 남에게든 그처럼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꼭 잊지 않고 떠오르는 한 자락의 기억이 있다. 몇년 전 연극배우협회에서 회장이라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맞아 제작·기획자의 역할로 '소년소녀 가장 돕기 기금마련 공연-출세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예회관 지하 연습실에서 한창 연습 중일 때 협회 회원인 K모 배우가 갑자기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문병차 시간을 내어 협회이사 몇 분들과 후문으로 들어서는데 후문 벽 모퉁이에 붙여놓은 '출세기?'의 포스터?찢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테이프로 얼키설키 고쳐 붙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행상 할머니가 유심히 우리의 행동을 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양동이 두 개에 좌판을 얹어 놓고 사탕과 껌, 과일 몇 개를 팔고 계셨다. 할머니는 더듬더듬 포스터를 읽으셨다.
"소년소녀 가장을 돕자는 얘기구먼, 누구도 나오고 누구도 나오는구먼"하시더니 "어려운 아이들 나도 돕고 싶어"라며 앞치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셨다. 할머니는 1,000원짜리 지폐 몇 장과 500원, 100원짜리 동전들을 꺼내 모두 7,200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우리 아들도 IMF인가 뭐 때문에 직장을 잃었어"라고 가만히 말씀 하셨다.
순간 가슴에서 왈칵 뜨거운 눈물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아픔을 겪어 보신 분들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처럼 이해하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건네시는구나.
과연 나는 그렇게 선뜻 남을 돕는 마음으로 다가섰던가 묻지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고, 새롭게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공연을 준비했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성금을 모아 기탁하게 되었다.
그 후, 서울대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그 할머니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후에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아드님이 재기하게 되어 그 할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 있겠지' 하는 바람을 지금도 기도하듯 지니고 있다.
/박 상 규 국립극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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