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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충남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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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충남 금산

입력
2002.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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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서대산에 첫 얼음이 얼었다던 23일 오전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느티골' 야산. 산 비탈을 타고 인부들이 전기톱으로 가시덤불과 칡 넝쿨을 걷고 잡목을 쳐 내고 있었다. 올해로 4년째 숲 가꾸기 공공근로에 나선 K(53)씨는 그 일을 '숲 숨통 틔워주기'라고 표현했다. "참 신기해. 이렇게 산의 '때'를 벗기고 숨통을 틔워주면 어디서 씨를 받아왔는지 봄이면 꽃을 지천으로 피워낸다니까." 그는 자신이 땀 흘린 산 자락에서 피어날 봄 꽃 볼 재미를 생각하면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굳이 봄이 아니라도 단장을 끝낸 늦가을 금산의 산야에는 봄 꽃보다 고운 연보랏빛 구절초와 콩 고물을 뿌린 듯한 쑥부쟁이가 가득했다.

금산군에서 1,000개의 자연공원 가꾸기 사업이 한창이다. 모든 마을과 숲길, 강길의 특색을 살려 1,000개의 자연공원으로 만들자는 이색적인 계획이다. 이 사업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거세게 몰아 닥치던 1998년 말 시작됐다. 다른 지자체들이 농공단지 활성화나 관광지 개발·홍보에 열성이던 때였다.

"군 면적의 80%가 산지인 금산의 살 길은 결코 다른 지자체 흉내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도 행정직 공무원 출신으로 시인이자 환경친화론자인 김행기(64) 군수는 충남 최고봉 서대산과 천태산 성치산 등 8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터를 잡고 있는 금산의 지리적 특성에 주목했다. 크고 작은 봉우리에 구비구비 흐르는 '비단강(금강)'이 사방 팔방으로 엇갈리면서 펼쳐 놓은 소분지와 산자락에 아름다운 마을이 들어서 있는 금산. 그는 결국 '공장' 대신 '자연'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김 군수는 그 해 7월 취임 하자 마자 실천에 옮겼다. 도로 청소 등에 동원되던 공공근로 인력을 전원 숲 정비로 돌렸다. 공공근로 인부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1년 내내 숲 속을 누비며 간벌과 가지치기에 동원됐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전국에 널린 게 산이고, 강원도 산에 비해 산세도 빼어나지 못한 데 웬 호들갑이냐"는 것이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데 숲 가꾸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따랐다. 심지어 일부 공무원들도 "몇 년만 지나면 잡목과 가시덤불이 다시 자라날 텐데 그 많은 산을 가꾼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숲이 속살을 내보이고, 감춰져 있던 산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일년 내내 음침한 그늘에 가려져 있던 관솔 숲에는 철 따라 참꽃(진달래) 개나리 노루귀 얼레지 같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읍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인 군북면 산안리의 100만평 규모 자생 산벚나무 군락지나 금성면 의총리·마수리 일대 15만평 참꽃 군락지도 숲 가꾸기 과정에서 발견된 갚진 '보물'이었다.

금산군이 지난 4년간 숲 가꾸기에 투입한 예산(150여억원)은 거의 전액이 공공근로사업 자금에 활용됐다. 동원된 인원만도 연 인원 40여만 명. 그간 숲 가꾸기 목표 면적(1만2,230㏊)의 91%인 1만1,150㏊가 숲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숲 가꾸기에 탄력이 붙을 즈음인 99년 말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했던 '금산군 경제사회발전계획' 용역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금산군의 시책에서 한 술 더 뜬 '그린벨트 확대'였다. 산과 숲, 강까지 포함한 금산의 모든 자연을 미래자원화 하자는 것이었다.

용역 결과에 힘을 얻은 금산군은 사업 명칭을 '숲 가꾸기'에서 '1,000개의 자연공원 가꾸기'로 확대했다. 간벌 과정에 나온 목재로 도로변과 마을 입구마다 원두막 모양의 간이쉼터를 세웠다. 길가 꽃밭 경계석을 걷어내고 나무 말뚝을 박았다. 공무원들이 10개 읍·면장과 이장들과 함께 군 전역을 누비며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나름의 특색을 찾아냈고, 주민들과 함께 자연공원 개발 전략을 짜냈다. 산안리의 '산벚꽃동산', 의총리의 '진달래동산'도 그렇게 탄생했다. 천태산 자락의 참나무 군락을 병풍처럼 두르고 봉황천을 마주한 제원면 제원중학교 일대 '학교공원'은 봄이면 진달래와 조팝나무 등 야생화가 지천이다. '강건너 언덕마을'이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얻은 금강 상류의 부리면 수통리 도파마을은 2㎞ 남짓 되는 강 둔치 산책로를 끼고 30여 호가 모여 사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도파마을에서 만난, 소문 듣고 마을 이름이 하도 예뻐서 찾아왔다는, 여대생 김모(22)씨는 "이름보다 풍광이 훨씬 더 예쁘고 운치 있다"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금산군의 공원은 그 흔한 방향표지판 하나 없다. 군에서는 이 역시 '전략'이라고 했다. "수용시설을 갖추고 누구나 쉽게 찾도록 해두면 당장 외지인들은 끌겠지만 풍광을 헤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주민들은 도시민 생태체험관광과 연계돼 농가 소득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충남도가 선정한 '4,000만이 살고 싶은 고향마을'이자 지난 해 농업진흥청이 정한 '전국 최고 마을'인 남일면 신정리(홍도마을)는 최근 민박사업을 시작했다. 주민 양현철(45)씨는 "민박소득보다는 도시민들과 정을 쌓아 우리 고장 무공해 농산물과 인삼 직거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산의 자연공원 가꾸기가 당장 큰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은 경제성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더디지만 효과는 나타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금산에서 살겠다며 찾아 드는 외지인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더딘 발걸음이, 두고 보면 비행기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모두 이렇게 믿는 듯 했다.

/금산=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금산에 반한 사람들

올해 초 금산군이 '금산의 사계(四季)' 사진집을 내겠다고 하자 야생초 연구가이자 사진작가인 김태정씨가 총대를 멨다. 거기에 송기엽씨 등 몇몇 사진작가가 동참했다. 작업 예산 3,500만원. 군 관계자는 '자원봉사 수준'이라고 했다. 얼마 전 금산군에서 자연공원들 입구에 표지판이라도 달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는 유명 서예가들이 글을 써 주겠다고 선뜻 나섰다.

이들 모두가 '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금사모)' 회원들이다. 자연공원을 사랑하는 모임답게 금사모는 출범부터 자연스러웠다.

1998년 김행기 금산군수가 의뢰한 '발전계획' 용역에 참여했던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 등 연구원들이 금산을 드나들며 그 자연환경에 매료된 것. 지인들을 통한 입 선전으로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과 전용수 인하대 교수 등이 금산을 둘러 본 뒤 '열성 팬'이 됐고…, 이듬 해 어느 날 '열성팬'들의 술자리에서 금사모가 탄생했다.

정기적인 모임이나 활동도 없다. 군 축제나 행사 때 시간 나면 들르는 게 대표적인 금사모 활동이다. 하지만 군 시책에 대해서는 자문도 하고, 뒤에서 돕는 데 발벗고 나선다. 금산군의 고집스러운 환경·문화사업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삼성연 이 상무는 "금사모 회원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금산에 반한 사람은 누구나 회원이고, 또 금산의 속살을 들여다 본 사람이면 누구나 반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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