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가 11월 초에 북한을 방문한다고 한다.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계획으로 한반도가 다시 싸늘한 분위기로 돌변한 상태여서 그의 방북은 주의를 끌게 된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그를 초청한 것도 가볍게 볼 수 없고,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와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가 동행하는 것도 흥미롭다. 오버도퍼 교수는 한국문제 취재를 오래 한 언론인 출신이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남북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레그는 레이건 대통령시절 조지 부시 부통령의 외교보좌관이었고,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었을 때 주한미국대사를 지냈다. 지금은 뉴욕에 본부를 둔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회장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중앙정보국(CIA)직원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한국정치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한 사람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협상에 의한 해결을 주장했고, 김일성 사후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서도 김정일에 대한 소문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 왜 김계관 부상이 그레그를 초청했는지 그 속마음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레그의 입을 통해 미국의 대북한 정서를 알고자 할 것이다. 그레그는 최소한 부시 대통령 외교안보팀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해줄 수 있을 것이며, 북한에 대한 미국 여론주도층의 인식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민간인 신분의 그레그는 대화 상대로 적절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레그는 북한에서 무엇을 얻어 올 수 있을까. 북한의 초청을 받았으므로 미국 정부의 특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에게 신호를 보낼 수가 있다.
■ 도널드는 평양에서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초청자인 김계관을 만나러 판문점이라는 노출된 통로로 북한에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협상이다. 그런데 북한은 클린턴 시대의 '불량국가'에서 '악의 축'으로 더 강등되었다. 그레그는 북한을 찾는 미국인들 중엔 좀 독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레그 대사와 만나 이야기를 한다면 좋을 것이다. 꼭 공개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면 이런 기회에 그 변화를 보여야 할 것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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