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1시40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J여고 앞. 오전 수업이 끝나지도 않은 시간인데도 가방을 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모두 수능을 앞 둔 고3 수험생. 학교 앞은 이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 차량과 학생들이 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3교시만 마치고 나온 이들 학생은 대부분 곧장 유명학원들이 밀집한 대치동 학원가로 향했다.■낮이면 텅 비는 고3교실
2003학년도 대입 수능시험(11월6일)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학원수업이나 개인과외로 최종 정리를 하려는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성화에 떠밀려 개점휴업하는 고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강남 일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 K고와 S고도 2주전부터 오전 11시까지만 정상수업을 하고 있고, C고와 W고는 일괄적인 단축수업은 아니지만 희망자에 한해 오전 수업만 받도록 허용하고 있다. 수능을 앞두고 학교마다 학생들을 자정 무렵까지 잡아두고 막바지 정리를 해주던 과거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대치동 H고 김모 교사는 "학원이나 과외방 등에 보내기 위해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하루 5통 넘게 걸려와 거의 정상수업을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어쩔 수 없이 우리 학교도 다음 주부터 단축수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푸념했다. J여고 3학년 김모(19)양은 "학원강의가 학교수업보다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에 시험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친구 대부분이 학원에서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고교 3년은 수능을 위해 다니는 것인데 단축수업이 뭐가 문제냐"고 되물었다.
■학원가는 낮부터 북적
강남 일대 고3 교실이 수능이 다가오면서 텅 빈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원가는 낮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댄다. 이날 낮 '수학 족집게 강의'로 유명한 대치동 D학원 강의실에는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2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언뜻 봐도 교복의 종류가 6가지. 그만큼 강남 일대 고교의 단축수업이 만연돼 있다는 방증이다. 수업을 받고 있던 S고 정모(18)군은 "한시가 급한데 어떻게 학교 수업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냐"며 "학원에서 수업을 받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학교교육 포기 비난 일어
고3 학생들에 대한 단축수업에 대해 전교조 등 시민단체들은 '자발적인 공교육 포기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교조 이경희(李京喜) 대변인은 "교육 당국은 철저히 감독해 해당학교에 대한 징계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과 윤석주(尹錫周) 연구사는 "학교 수업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해당학교에 대해 조사를 한 후 법정 수업일수를 어긴 학교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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