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유혈사태로 끝난 러시아 인질 사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 푸틴 정부의 대 체첸 해법에도 적잖은 진통과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예상밖의 전격적인 무력진압으로 푸틴은 테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재차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인질만 110명이상 가까운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국제 여론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초래될 수 있는 더 큰 위험을 막았다" 등 긍정적인 평가가 주조를 이뤘다. 상황종료 후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다" 며 용서를 구한 푸틴의 대 국민연설은 대의명분과 현실론 사이에서 최고 통치권자가 겪었을 갈등과 고민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러나 푸틴의 '성공' 은 무력진압 및 정부―인질범 간 협상 과정에 대해 드러날 내용 여하에 따라 단명으로 끝날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인질들의 대량 희생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어떤 카드를 내놓았는지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이번 사태를 1979년 지미 카터 정부 당시 참담한 실패로 끝난 이란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에 비유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모스크바 시민들도 사건 발생 직후 사태의 책임이 정부측에 있으며, 무력보다는 협상을 통한 해결을 원했던 것으로 나타나 이번 사태는 푸틴 정부에 역풍으로 돌변할 여지도 상당부분 내포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체첸 반군에 대한 푸틴 정부의 기조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점이다. 3년 전 모스크바 아파트 단지 등에서 3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연쇄 폭탄테러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는 시민들은 체첸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엄청난 인명피해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3년 간 정부측 집계로만 4,000여 명의 러시아 병사가 희생됐다. 인권단체들은 러시아 병사가 1만 4,000여 명, 체첸 희생자는 게릴라와 민간인을 포함, 8만여 명이 실종되거나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강경 위주의 대 체첸 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시들해져 가는 상황에서 터진 유혈 인질사건으로 푸틴 정부의 체첸 해법은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하거나 무력대응의 입지가 위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내무차관은 사태 진압 후 체첸 내 군사작전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대규모 군사작전이 앞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러시아―체첸 분쟁이 이 사태를 계기로 국제문제로 불거져 나왔다는 게 푸틴 정부의 큰 부담이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수많은 지역분쟁의 하나에서 체첸의 주의주장과 명분이 국제적으로 조명받는다면 러시아의 대 체첸 정책은 분수령에 직면할 수 있다.
인권문제를 들어 대 체첸전을 강력히 비난해 오다 9·11 이후 대 테러전에 대한 국제공조를 얻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온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도 관심사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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