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의 'MJ(정몽준 의원)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지시설' 폭로가 정치권과 재계에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선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이미 1999년 사법처리가 끝난 사안을 이 전 회장이 폭로한 배경에 대해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란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은 2,134억원이라는 거금이 동원된 사상 최대 주가조작사건으로 정몽헌(鄭夢憲·MH) 회장 등 현대 오너와 계열사 최고경영진, 임원 등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 이중 5명이 사법처리 됐으며 이 전 회장은 주가 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 발표에 따르면 1998년 8월∼11월 이 전 회장은 현대증권이 갖고 있던 현대전자 전환사채를 비싸게 팔기 위해 주가조작에 나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으로부터 각각 1,882억원과 252억원을 지원받아 주가를 1만4,800원에서 최고 3만4,000원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MJ 개입논란
정 의원은 그동안 토론회 등에서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책임론이 나올 때마다 "당시 경영진이 한 일이며 법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주가조작에 현대중공업이 가장 많은 자금을 동원했고, 당시 정 고문이 주주이사로 등재돼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했다는 점을 들어 책임론을 제기해왔다. 이 전 회장의 폭로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다 당시 검찰의 '이 회장 1인극' 결론을 뒤집는 것이라는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주가조작 당시 MJ를 포함한 정씨 일가는 유상증자 대금 마련을 명분으로 보유하고 있던 현대전자 주식 89만주를 매각, 45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발표됐다.
■MJ MH 모두 등돌리나
현대가에서는 이 전 회장의 폭로 발언에 정치적 목적이 섞여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정치권과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미 지난주부터 "MJ가 국민 앞에 머리숙일 사건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또 이 전 회장과 MJ간의 불편했던 '사감(私感)'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가의 한 인사는 "정몽준 의원은 99년 '왕자의 난'이 이 전 회장 등 이른바 가신(家臣)의 장난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 서로 관계가 악화됐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또 올 초 현대중공업이 1997년 하이닉스의 외자유치 당시 지급보증을 섰다가 입은 2,400억원의 손해에 대해 반환소송을 제기, 이 전 회장과 현대증권 등이 현대중공업에 1,718억원을 지급하라는 법원판결을 받으면서 사이가 결정적으로 갈라졌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이태규기자 tglee@hk.co.kr
주식투자와 관련한 연구·조사 차 일본에 왔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사진)은 자진해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시종 정몽준 의원에 대한 검증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음은 회견에 앞선 이 전 회장의 발언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다.
"미국에서 보니 한국은 정직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 이번에 대통령 뽑을 때 이걸 중요시해야 한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내가 천하의 죽일 놈이 돼 있는데 억울하다. 1987년 정몽준씨가 현대중공업 회장이 된 뒤로는 형들도 터치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룹 돈은 종합기획실서 오너와 상의해서 움직인다. 증권사는 그저 매매만 했을 뿐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재벌 오너는 법 위에 있다. 재벌 회장이 대통령 나온다고 하는데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재산 신탁했다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된다. 30년 현대 근무로 이런 저런 내용 많이 알고 있다. 몰매 맞고 한국서 못 살지도 모르지만 국민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싶다. 정씨가 대통령이 되려면 검증받아야 할 것이 많다."(회견전 발언)
―정몽준의원으로부터 현대전자 주식 매집과 관련해 직접 지시나 부탁을 받았나.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 주식을 산다는 것은 주인과 그룹 종합기획실이 결정하는 것이다. 현대증권은 중공업측의 사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래 직원이 창구에서 사 주기만 했다. 나는 거래 중 보고 한번 받은 적이 없다. 나중에 주식을 팔아 누가 이익을 보았는지를 생각해 봐라. 샀다가 팔아서 중공업이 이익을 가져갔다. 나는 당시 대북사업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정몽준의원이 주가조작과 관련해 위법한 사실이 있다는 뜻인가. 증거를 제시해 달라.
"검찰에서 누가 현대중공업 자금을 조달했는지를 주가조작 여부와 관련해 굉장히 중요시했다. 나는 아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 주식을 산다는 결정은 정몽준씨가 하는 것이다. 내가 지시해서 될 일이 아니다. 위법이나 조작 여부는 나는 모른다. 우선 정씨가 솔직히 밝히고 그게 죄인지 아닌지는 차후 따져 볼 문제이다. 증거는 천천히 얘기하자."
―정몽준 의원이 대선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
"먼저 과거의 일들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고 본인이 솔직히 밝혀야 한다. 재벌 기업은 한국에서 먼저 하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정치권 반응
국민통합 21은 27일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전 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대구를 방문 중인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대선 정국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면서 적극 해명하는 한편 정치적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
정광철(鄭光哲) 공보특보는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3년 전 사법부의 판단이 끝났고 정 의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현대중공업은 당시 계열 분리 전이었고 현대그룹 전체 차원에서 의사가 결정됐기 때문에 정 의원이 관련됐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특보는 또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이 전 회장이 느닷없이 일본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가진 배경이 궁금하다"며 "이 전 회장이 말 없는 고인을 팔아 정 의원 흠집내기에 나선 것이 스스로의 판단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홍윤오(洪潤五) 공보특보는 "3년 전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 등 현대 일가가 주가조작사건에 개입했다고 두번이나 주장, 당시 정 의원측에서 소송을 검토한 적이 있다"며 "대선 직전에 이런 주장을 한 정치적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특정 정당과의 연계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통합 21의 한 당직자는 "2000년 '왕자의 난' 당시 이 전회장이 정 의원 형제들의 갈등을 부채질, 정 의원과 불편한 사이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라고 배경을 짚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 의원을 비난하면서 양심 고백과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부도덕한 재벌이 권력까지 가지면 국가의 불행"이라며 "이 전 회장은 현대가(家)의 모든 일을 내부에서 실행한 사람"이라고 이 전 회장 발언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주요 당직자들이 원론적 언급에 그치고 대변인실도 정식 논평을 내지 않는 등 이 전 회장 발언이 현재의 3자 대결 구도에 미칠 미묘한 영향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민주당은 즉각 정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을 촉구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경(李美卿)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전 회장 발언으로 그동안 의혹 수준이던 정 의원의 주가조작 연루설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명백한 경제사범인 정 의원은 혁명적 정치개혁 등 국민 기만적 발언을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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