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바라바시 지음·강병남 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발행·1만6,000원'케빈 베이컨의 6단계'라는게임이 미국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풋 루스' 등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케빈 베이컨을 중심으로 그와 함께 출연한 관계를 1단계로 볼 때, 다른 배우들이 케빈 베이컨과 몇 단계 만에 만날 수 있는 지를 찾는 게임이다. 그 결과 로버트 레드포드는 2단계 만에, 줄리아 로버츠는 3단계 만에 베이컨과 만났다. 이런 식으로 했더니 할리우드 배우 대부분이 6단계 이내에서 베이컨과 연결됐다. 이들 정도는 아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아는 사람 몇 명만 거치면 아주 많은 사람과 알게 된다. 그만큼 세상은 서로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생각을 학문에 적용시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자연과 세상의 원리로서 이 같은 결합 즉 네트워크를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링크'(원제 LINKED)는 네트워크 과학의 기본 개념을 소개한 책이다. 헝가리 출신의 저자는 겨우 서른 다섯의 나이지만 미국 노트르담대 물리학과 종신교수로 재직중인 이 분야의 전문가다.
과학자들이 네트워크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세기 과학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20세기의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려면 구성 성분을 해독하라. 부분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한 실체의 구성 성분을 알아내면 그것들을 모아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웬만한 물질의 구성 성분은 알게 됐다. 그렇다면 당초 생각처럼 성분을 끼워 맞춰 전체를 알 수 있게 됐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는 과학자들이 많다.
좋은 보기가 인간 유전자다. 과학자들은 유전자의 코드와 DNA의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면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보니 인간 유전자는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대신 유전자가 서로 결합돼 있었다. 과학자들은 생명 비밀의 열쇠는 개별 유전자가 아니라 결합체 즉 유전자 네트워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네트워크는 단순히 자연과학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케빈베이컨의 6단계' 게임처럼, 사회의 많은 부분을 네트워크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사이트가 다른 여러 사이트와 연결돼 있는 인터넷이 보기다.
그런데 사이트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연결 사이트가 특히 많은 '허브(Hub) 사이트'가 공격 받으면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유전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유전자와 많이 결합한 유전자는 변형 또는 파괴될 경우 큰 질병을 초래한다.
네트워크 과학에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 경제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학문이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 같은 유사성 때문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과학은 시작 단계에 불과해 그 성격이나 방식 등에 대한 뚜렷한 과학적 성과는 시간이 더 흘러야 나올 것 같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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