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인터뷰에서 국정원의 정권 말 줄 서기가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증언했다. 그는 "1997년 대선 때도 당시 안기부 고위직에 있던 Y씨가 최고급 정보를 들고 DJ를 만나러 와 우리쪽에 도움이 됐는데, 그 사람은 국가 정보를 팔아먹은 것"이라고 했다. 또 "일부 인사가 정치권 줄 대기를 하는 바람에 국정원이 이 모양이 됐는데, 지금도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대충 안다"고 주장했다.국정원 최고책임자를 지낸 그의 얘기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국정원의 난맥상을 여실히 말해준다.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주요인사 도청자료가 정치권에 즉시 전달돼 파문을 일으키는 등 국정원의 기강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신건 원장체제의 국정원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누가 그 짓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안다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권 말이 되면 구명도생(救命圖生)을 위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작태는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국가 최고정보기관으로서 본연의 업무에만 전념토록 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정보기관 종사자들을 회유하거나 유혹하는 한심한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는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정권 교체기 마다 만신창이가 되고 최고 책임자가 불행한 종말을 맞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국정원이 이 같은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선 뒤는 늦다. 현 정권 아래서 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 전 원장이 직무 중 알게 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냐 하는 지적은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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